처음 흐린 날에 산길을 걸었을 때에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마을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길을 걷게 되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 이르면서 빗방울 떨어지는 간격이 내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그만큼 비가 내리는 속도도 빨라지니, 어느 순간에 이르자 빗방울이 풀에 부딪치는 소리가 확연히 들릴 정도로 세차게 강우 현상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비가 조금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산을 들고 나갔는데....... 우산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우산을 들고 나갔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온 몸이 물에 젖어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런 상황을 맞지 않을 수 있었음에 그저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우산을 펼친 채, 조용히 앞길을 걸어 나아가면서 점차 어두워져 가는 하늘 아래에서 인근의 마을을 향해 산길을 따라 내려가려 하였다.
  공인된 휴일 중 하나인 '어둠의 날' 이 되면 항시 인근 마을을 향해 산길을 따라 내려가고는 한다. 그저 단 하나의 광경을 비롯한 여러 광경이 보고 싶어서였다.
  그 마을 너머에는 절벽 너머로 이어지는 거대한 철로가 있어서 산골짜기 사이의 두 산길을 잇고 있는데, 그 철로의 가장자리로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목이 주어져 있으며, 그 끄트머리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수정으로 이루어진 사람 평균 높이의 5 배 가량 되는 높이를 가지는 길다란 탑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밤마다 그 탑의 끄트머리에 파란 불꽃이 피어나 주변 일대를 파랗게 비추는 광경을 보인다.
  그 파란 빛을 발하는 불꽃에 의해 파랗게 물들여지는 수정들의 모습을 처음 본 일은 지금으로부터 4 개월 즈음 전의 일. 그 날에 나란히 빛을 발하는 탑들의 모습을 본 이래로 그 기억을 잊지 못하며 항시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것이었다. 그림으로 그려서 그 광경을 감상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바라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 전해지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또, 그 곳으로 가기 위해 날아가는 등의 다른 수단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기도 하지만 가는 도중에 보이는 여러 광경 역시 보고 싶었기에 항시 직접 걷거나 낮은 고도에서 천천히 비행을 행하며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었다.
  문득 '비' 에 관해 들은 음악이 하나 있다. 이전에 공원에서 친구와 함께 공연 관람을 하였을 때, 어떤 악단이 '비' 에 관한 음악을 연주하고, 그 연주에 맞춰 한 여성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우산으로 머리를 보호하는 채, 길을 걷다 보니 문득 그 노래가 떠올랐고, 그 노래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곡조가 귓가에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였고, 그러면서 비가 내리는 광경을 즐기면서 산길을 걸어 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내가 거느리던 소정령이 나의 왼편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에 이어 파란색을 띠며 깜박거리기를 반복, 그와 더불어 나의 친구 중 한 명으로서 아르세아(Arsea) 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타리아, 지금 얼마나 비가 내리고 있니?"
  "응, 많이 내려." 그리고 처음 나갔을 때에는 거의 기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내리고 있었던 탓에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게 될 줄은 몰랐다는 화답을 바로 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이어지는 아르세아의 목소리.
  "물뿌리개에서 물이 뿌려지는 만큼 내리고 있어?"
  "그 정도 이상이야, 하늘에서 나무에게 물을 퍼다 주는 것 같은 느낌이야."
  이에 나는 다소 과장된 표현을 행하며, 아르세아에게 화답을 해 주었다. 그러자 아르세아는 다소 걱정된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며 나갈 것인지를 판단하지 그랬느냐고 물은 다음에 또 수정 탑들이 모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냐고 물은 다음에 다른 것은 필요 없으니 열차에 치이지 않게 주의하기만 해 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나에게 전하려 하였다.
  마을에 이르렀을 때 볼 수 있는 풍경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중심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상점들과 그 상점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 한 동안 적적하기만 하던 풍경 속에 있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즐거운 모습에 나 역시 그들의 분위기에 이끌려 즐거워지고는 한다. 이번에도 찻집 안에서 찻집에 모여 앉은 이들이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즐거워짐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처럼 찻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에는 미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즐거운 느낌을 전해주는 곳을 지나, 도시의 동쪽 경계에 이를 즈음, 오른편의 먼 저편에서부터 한 대의 기차가 조용히 철로를 따라 지나고 있는데, 그 때 마침 아르세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며 철로에 관해 하나의 물음을 건네려 하고 있었다.
  "타리아, 언젠가 한 번 기차 타 볼까?"
  "기차는 왜? 기차를 타고 멀리 갈 일 있어?"
  난데없이 기차를 타겠느냐고 물음을 건네는 아르세아의 목소리에 바로 되물음을 건네는 나. 그리고 지금 수정 탑들이 놓여진 철로의 길을 걷고 있음을 밝힌 다음에 아직은 물을 뒤집어쓰지 않았으니 그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음을 밝히려 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다행이라고 화답을 하고서 기차를 타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에 관한 언급을 바로 하기 시작하는 아르세아.
  "그 기차를 타고......."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목소리를 내어, 건너편 산에 있는 호수로 가고 싶다는 발언을 드러내었다. 그에 이어 그 이유로써 마침 날도 많이 더워졌으니, 호수에서 잠시나마 몸과 마음을 식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바로 답의 목소리를 내었다.
  이에 나는 다른 말없이 바로 3 일 후인 '불의 날' 에 가자고 결정을 보았다. 그리고 그 때는 나도 그렇고, 아르세아도 그렇고 달리 할 일이 없을 테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느냐고 그 이유를 밝히고서 언급한 날-6 월 29일-이 되면 반드시 가자고 그에게 나의 뜻을 전하였고, 그 말에 대해 바로 알았다고 화답을 하고서, 아르세아가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당부를 하면서 하나의 대화가 끝이 나게 되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나에게 그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광경으로 무엇이 있느냐고 물은 다음에 대뜸 크게 목소리를 내며 경고를 하였다.
  "수정 탑을 거론하면 안 돼, 그것을 말하면 집에 들여보내지 않을 테니까, 애당초 그 수정탑들은 마을 바깥에 있는 것들이잖아!"
  물론 나 역시 그것을 거론할 생각은 없었다. 그 대신 언급할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전에 들른 적이 있던 시장 거리와 식당 거리. 그 거리들을 언급하면서 나는 어둠 속 산길을 지나가며 느꼈던 쓸쓸함을 거리에 모인 사람들의 밝은 모습을 통해 달랠 수 있다고 그 거리에 관한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였지만, 아르세아는 영 내키지 않았는지 바로 괜찮다는 화답을 하고, 그 이유 발언을 드러내었다.
  "밤중에 거리에 나가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그래. 나, 취침 시간 빠르다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뭔가 핑계 같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기운이 없어진 아르세아가 21 시나 22 시 즈음 되어서 잠들 때도 있기는 있으니까-여름에는 그런 일이 드물다-. 실제로 평상시의 아르세아는 4 ~ 5 시 즈음에 일어나기 위해 21 시 취침도 마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핑계라고 무작정 간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는지 언젠가 한 번 기회 잡아 그 거리로 가 보겠음을 밝힌 다음에 그러다가 자신이 졸릴 때가 되면 업어주거나 안아주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두었다. 물론 나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밝은 목소리를 내어 같이 떠나는 간이 여행에 대해 기대하고 있겠음을 알리며 통신을 끝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눈앞으로 푸른 불꽃을 밝히는 수정 탑들이 자신들의 빛에 물들여진 모습을 나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전 때도 그러하였고, 항시 보아왔지만 계속 보고 싶은 그런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