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lphid 4th - 4. Green Plains, Dark Blood : 6


  함대를 벗어나 황야로 날아가기 시작할 즈음, 나를 비롯한 일행은 서로 떨어져 있었으나, 황야를 계속 비행하면서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네샤가 앞장서고, 그 뒤를 나와 리마라가, 그리고 뒤쪽에서 세미아가 따라가고 있는 형태로 비행을 이어갔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함대의 배후가 저 너머에 있다는 거지?"
  "그러하겠지." 그 무렵, 나와 동행하던 리마라가 앞장서던 아네샤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그는 바로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눈앞으로 펼쳐지는 광야의 모습을 앞장서는 아네샤의 뒷 모습과 함께 바라보며, 비행을 이어가는 동안, 이어서 리마라가 다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미라 씨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내가 리마라에게 그런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들었느냐고 물었다. 아네샤라면 몰라도, 그 '조언자' 라 칭해진 존재에 대해 중심체가 언급한 바를 리마라가 직접 듣지는 못했고, 이후로 급히 황야 쪽으로 날아가느라, 서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클라리스 씨께서 알려주셨어. 아무래도 미라와 악연이 있었던 존재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
  "그래?" 그러자, 내가 바로 그렇게 말을 건네었다.

  그 무렵, 황야의 왼쪽 저편에서 두 사람이 비행해 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장서는 이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나비의 그것과 같은 형상의 새하얀 날개를 펼치며 비행하고 있었으며, 뒤따르는 이는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앞장서는 이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날개를 펼치며 비행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검을 들고 있었으며, 가능한 빨리 날아가려 하였는지, 일행보다 앞서가려 할 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였다.
  "원래는 미라 씨처럼 그 역시 인간이었다고 했어. 재능 있는 무용수였다는데,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고 속여온 추악한 성품의 소유자였대.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몰락해서 처참하게 죽은 것을 그 혼을 기계 군단이 수습해서 군단의 일원으로 두려 한 것 같아."
  이후, 내가 리마라 그리고 세미아에게 그간 들은 '조언자' 라 칭해진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함대와 관련된 '사령' 이라 칭해진 존재가 언급되었어. 그 자가 '조언자' 에게 함대의 실질적인 지휘를 맡긴 것 같아. 함대 전력을 몰락시키다 못해, 보잘 것 없을 것 하나 잡겠다고, 자신의 대원들까지 무참히 희생시키기까지 한 그 무능한 작자에게 귀중한 전력을 맡긴 셈인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어."
  "녀석을 처치하면 답이 나오겠지." 그러자, 세미아가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건네었다.

  이후, 오른편 먼 곳에서 이전까지 간간히 보였던 녹색 글라이더 무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일행과 같은 대열로 비행하고 있는 이들로서 글라이더의 수는 모두 넷이었다. 그 중 가장 앞쪽을 비롯한 세 글라이더들은 날개 아래쪽에 두 정씩 짧은 포를 달고 있었으며, 뒤쪽의 글라이더는 등 위에 거대한 포를 장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해당 개체는 지원 포격 역할을 맡았음을 그 모습을 보며, 바로 알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가끔씩 보였던 이들이야, 이들도 함대 사이를 오가며, 함선과 병기들을 격파해 온 이들이었을 거야."
  그 무렵, 나의 소정령이 통신을 개시하면서 마녀에게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르데이스의 엘베 족 유격대원들일 거예요. 저들이라면 그들 중에서도 선봉대원이겠지요. 여러분들께서 기함과 그 주변 함선들을 타격할 동안, 그 주변 일대에서 함대의 주 전력과 정면 대치를 행하는 역할을 맡았던 이들이에요. 함대에서 가장 많은 병기들을 격파한 이들이란 것이지요.
  저 선봉대원들의 핵심은 이전 전쟁에서 에를랑 (Erlang) 이란 악마의 병기를 격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대마법사들의 쌍둥이 딸들인 에오르 린 (Eor Lin) 과 에오르 리아 (Eor Lia) 자매로 총포 사격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괴물 사냥꾼이에요.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에오르 자매의 직속 부하라 할 수 있는 리 셀린 (Li Selin) 그리고 그의 동료인 세 라빈 (Se Lavin) 일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그 시점에서 배후 존재를 사냥하러 가는 일행 그리고 클라리스와 미라를 관찰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라, 직접 그들과 마주하지는 않겠으나, 그 이름들은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서, 나와 반드시 인연이 있을 이들일 것이라 그 이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왼편 먼 곳에서 앞장서 가던 클라리스 그리고 미라는 방향을 틀어 일행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더니, 계속 앞서 날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보다 더욱 가속하며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아네샤는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 가속에 박차를 가하려 하였으며, 나 역시 그런 그를 따라가려 하니, 그로 인하여 일행은 나와 아네샤가 앞장서고, 리마라, 세미아가 뒤따르는 대열을 가지게 되었다.

  황야를 향하는 비행은 처음에는 그저 고요하기만 했고, 그래서 일행 간에 대화하는 목소리들이 주로 들려왔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눈 앞 먼 곳의 어둠 속에서 붉은 빛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병기들이 교전을 위해 접근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녀석' 의 근거지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처음에 몰려온 이들은 자그마한 비행선 형태의 검은 몸체 아래에 가느다란 두 팔이 달린 형태로 기수 부분에 붉은 눈이 번뜩이는 개체들이었다. 이들 역시 지금껏 만나 온 병기들과 마찬가지로 기계 병기들이었으나, 그 형태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에는 벌레처럼 보였다.
  이들은 일행과 가까워지자마자 기수의 번뜩이는 눈에서 붉은 광선을 쏘는 공격을 해 왔다. 광선의 속도가 빨라 눈의 번뜩임이 격해지면 바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광선의 광속을 이용한 공격을 해 오면서 머리 크기만한 작은 개체들은 빠르게 일행 쪽으로 돌격해 왔다.
  어찌어찌 광선 공격들을 피해내면서 이들을 향해 푸른 번개 줄기들을 발사했고, 검은 몸체에 박힌 번개 줄기들은 이들을 즉시 폭파시켰다. 몰려 온 이들의 수는 대략 10 여 정도였으며, 이들 모두 일행과 접전을 벌이자마자 모두 격추되었다.

  이후, 클라리스, 미라가 앞장서기 시작하면서 앞서 오는 병기들을 격추시키는 역할은 그들이 맡게 되었다. 이후로 더욱 큰 개체들이 몇 기씩 날아왔고, 포탄, 빛 줄기 등을 발사하며 두 사람을 위협했으나, 이들 모두, 머지 않아, 클라리스가 불러온 빛의 검에 의해 격추당했고, 공중에 폭발하는 열기의 흔적만을 남겼다.
  뒤이어, 양 날개 하단에 하나씩 미사일을 달고 있던 은백색 전투기형 비행체들이 앞서 오는 것들부터 다섯 개체씩 V, W 자 (N, NN 자) 대형을 이루며, 돌진해 왔다. 이들은 두 사람에게 접근할 무렵에 양 날개의 미사일들을 동시에 발사했으며, 각 미사일들이 공중에서 자폭하자마자 각각의 폭발한 곳에서 자탄들이 연기를 뿜어내며 두 사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10 여 발의 미사일들이 미사일 하나당 수십 여 발의 자탄들을 쏟아내니, 두 사람 앞에 수백 발의 자탄들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탄들이 접근할 무렵, 미라가 왼손을 앞으로 뻗어 빛의 기운을 일으킨 이후에 그것을 전방 일대로 흩뿌렸다. 그리고, 흩뿌려진 10 여의 빛들마다 하나씩 하늘색 빛을 일으켰으며, 각각의 빛은 이후, 미라와 닮은 소녀의 형상을 이루자, 미라가 자신의 소정령 그리고 자신의 왼손에 하늘색 빛을 불러오고서, 그 빛이 10 여 줄기의 곡선을 그리는 하늘색 광선들을 뿜어냈다.
  이후, 미라의 분신 역할을 해냈을 소녀의 형상들이 자신들의 두 손에 모인 하늘색 빛에서 미라처럼 10 여의 빛 줄기들을 뿜어내니, 100 이 넘는 빛 줄기들이 연기를 그리며, 클라리스 등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을 자탄들을 향해 곡선을 그리며, 돌격해 갔다.
  빛 줄기가 자탄들에 격돌할 때마다 하늘색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생성되면서 폭음이 터져 나왔으며, 그 빛 무리가 전방 일대에 퍼지면서 주변 일대의 어둠을 격렬히 밝혀 갔다. 이후, 폭발하는 빛을 대신해 자탄들의 폭발에 의해 생성됐을 연기들이 전방 일대에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이어서 클라리스가 왼손에 방패를 생성한 채로, 직선 상의 궤적을 그리며 자탄들이 폭발한 흔적을 궤뚫으며, 그 너머로 날아가려 하였다.
  클라리스가 불무리를 뚫으려 하는 광경을 보자마자 그 위쪽 상공으로 날아가서 그 광경을 관찰하려 하니, 어느새, 클라리스는 방패를 앞세워, 비행체 무리 바로 앞까지 접근해 오고 있었다. 당황한 듯한 움직임을 보이던 비행체들은 몸체의 광탄 사격으로 대응하려 하였으나, 클라리스는 방패로 광탄들을 막아내거나, 광탄 무리를 피해 가면서 앞서 오던 비행체에 접근, 그 비행체부터 자신의 소정령이 발사하는 광탄들, 그리고 검격으로 비행체의 몸체를 타격하고 갈라내어 내부 기관의 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비행체들을 격추시키려 하였다.
  앞서 오던 비행체 3 기가 그렇게 격추되자, 남은 이들은 퇴각하려 하였으나, 미라와 소녀의 형상들이 발사하는 하늘색 빛을 발하는 칼날 무리에 의해 몸체가 궤뚫리거나 찢겨지면서 폭파되거나 추락하기 시작했다. 추락한 이들이 지면에서 폭풍과 폭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그들 무리는 끝이 났다.

  이후, 3 기의 전투정들이 내 키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비행체들을 이끌고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으나, 클라리스가 이들을 공격을 막아내고, 미라가 반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전투정 무리가 격파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는 동안 측면 쪽으로도 크고 작은 전투기 무리들이 날아와서 나를 비롯한 뒤따라 왔을 일행을 위협해 왔고, 그 때마다 내가 번개 줄기들을, 그리고 아네샤가 바람 줄기들을 발사해 가며, 이들을 격추시키려 하는 것으로 대응해 갔다.



  그렇게 한 동안 정신 없이, 공중에서 교전을 치르고 있는 동안, 어느새, 일행이 날아가던 암운이 드리워진 하늘 아래 황무지 풍경도 변하고 있었다. 나란히 서 있었을 메마른 나무들 사이로 돌을 깎아 만든 블록들로 구성된 거대한 가도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먼 너머에서는 기둥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이런 회랑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역시, 그 거처가 멀지 않다는 것이겠지?"
  이후, 리마라가 아네샤에게 묻자, 아네샤는 그러할 것이라 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전방 너머에서는 검은 병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황무지만 보일 때에는 공중에서만 몰려 왔으나, 회랑이 드러난 이후로는 지표면에도 병기들이 보이기 시작해, 지표면에서 검은 전차들이 길다란 대공포로 붉은 광탄들을 연속 발사해 가며, 회랑 일대를 비행하던 이들을 위협해 가고 있었다.
  상공에서는 계속해서 검은 날개를 장착한 전투기들이 가속하면서 돌격해 왔고, 지표면에서는 대공포를 장착한 전차, 자주포들의 대열이 이어지거나, 지표면을 부양하던 전투기들이 상공으로 떠오르려 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 때마다 앞장서던 클라리스, 미라가 소환하는 빛의 칼날들에 의해 격추당하거나, 그들을 뒤따르고 있었을 아네샤, 세미아 등이 방출하는 곡선을 그리는 바람 줄기들에 의해 격추당하며 폭파되고 있었다. 일부는 클라리스 등을 지나쳐, 일행 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오는 이들에게 그것들을 맡기려 한 것 같았다.
  이후, 전투기들을 대신해 전투정, 공중 부양형 전차들이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상공 쪽으로 날아오르고, 지표면에서는 다연장 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한 장갑 차량들이 미사일을 발사, 공중에서 자탄들을 흩뿌리는 방식으로 일행을 위협하려 하였다. 자탄들의 피해가 크지 않았는지, 클라리스, 미라 모두 보호막으로 자탄들을 막아내고서, 지표면 쪽으로 빛의 검들을 소환해 차량들을 향해 내리 꽂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반격을 가하려 하였다. 한 번 이상 빛의 검에 관통당한 차량들은 중심부가 폭파되면서 망가지면서 기동 정지가 되거나, 폭발해 약간의 흔적만 남은 채,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그들이 놓친 차량들 중 일부는 나와 아네샤가 낙뢰, 돌개 바람을 소환해, 이들을 관통하도록 하면서 폭파시키려 하였다. 또한, 다른 곳으로 간 장갑 차량이나 전투정들은 좌, 우측에서 일행과 동행하고 있었을 야누아 일행 그리고 엘베 족 전사들과 맞서게 되었으며, 그 병기들 역시 얼마 가지 않아 이들의 마법 공격 및 총포 공격에 의해 계속 타격을 받고 격침, 격파되었다.

  회랑을 비행하는 동안 회랑의 주변 일대에 검은색을 띠는 시설 건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회랑의 전방 쪽으로 가능한 빨리 비행하려 하면서, 회랑과는 거리가 있는 그 곳들은 그냥 지나쳐 가려 하였으나, 엘베 족이나 야누아 자매는 이들을 가만히 놓아두려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들을 지나친 이후에 뒤에서 폭격이 가해지는 소리와 건물이 폭파, 파쇄되는 소리가 잇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영원토록 변함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회랑 주변 일대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일대에 보이는 풍경이 황무지에서 도시의 폐허로 변하고, 회랑을 구성하고 있던 블록들이 없어지며, 하나의 황폐해진 가도의 모습이 대신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의 끝에는 무너지다 만 건물들로 둘러싸인 하나의 막다른 길목이 드러나니, 그 곳이 회랑이라 칭해진 가도의 종점 역할을 하는 곳인 듯해 보였다.
  도시의 유적에 도달하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둠의 무리, 그 근원에 도달한 탓인지, 느껴지는 공기의 기운이 이전과는 묘하게 달랐다. 공해 (Pollutia) 의 기운이냐면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대에서 문명이 사라진지도 이미 천 년은 넘게 지났을 테니, 문명이 일으킨 공해는 그 시점에서는 이미 소멸했을 것이다.

  "여기가 길의 끝인 것 같은데?" 길의 종점인 듯한 지점에 당도하자마자 리마라가 내게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한 것 같다고 답하고서, 당장에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녀석' 이 주변 일대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주변 일대의 기운이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도 밝혔다.
  "그것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자, 리마라가 이어서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러할 것이라 이어 답했다.

  한편, 클라리스는 미라와 함께 대각선 상으로 날아 내려가면서 고도를 낮춰, 지표면 근처에 이르고, 지표면의 바닥을 밟지 않고, 떠 다니면서 (날개를 접지 않은 채, 지표면 위에 떠 있었다) 문명의 붕괴되다 만 흔적들로 둘러싸인 길, 흙먼지, 자갈돌, 바위로 뒤덮혀 마치 황무지를 보는 듯한 길 위를 주변 일대를 둘러보려 하였다. 그 때에는 클라리스가 아닌 미라가 앞장서려 하였으며, '그것' 을 찾으려 하였음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분명, 이 지점이었을 거야, 그렇지 않아?" 길 위에 머무르고 있었을 클라리스가 묻자, 미라가 바로 답했다.
  "그러할 거야. 사악한 기운의 흐름이 여기서 멈춰서 뭉치고 있었으니까."
  한편, 그들이 머무르고 있던 곳, 그 앞쪽 너머에는 1, 2 층 부분은 넓고, 그 위쪽 부분이 좁으며, 상층부에 거대한 반구형 돔이 자리잡은 구조의 건축물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곳곳이 무너졌고, 특히 돔은 반 즈음 부서져 있었지만, 전반적인 외형은 어느 정도 남아, 그런 형태였음을 짐작함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궁전이었을지도 몰랐을 그 건물의 유적을 미라가 자신이 오른손에 잡고 있던 칼 끝으로 가리키며, 클라리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악한 기운이 유난히 짙게 느껴지는 곳이 있어. 저 건물 안쪽이야. 길을 따르는  사악한 기운의 근원이 건물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더니, 미라는 궁전이었을 것처럼 보였던 건물 쪽으로 공중에 뜬 채로 움직이며 가려 하였고, 이에 클라리스가 미라를 따르며, 건물 쪽을 응시하려 하였다.

Il est temps.
(때가 되었군)

  그 순간, 건물 안쪽의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이 서서히 깜박이기 시작했다, 사악한 기운이 그 건물 안에 짙게 느껴지고 있으며, 건물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두 사람의 예상대로, 그 내부에서 사악한 기운을 상징하는 붉은 빛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건물 내부에서 붉은 빛이 번쩍일 때와 마찬가지로, 건물 안쪽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때와 같이, 기계적이고 음침한 남성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오고 있었다.

Je t'attendais.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들린 첫 목소리였다. 여타 기계 병기들이 아닌, 끔찍하게 뒤틀리기는 하였으나, 기계 군단에 혼을 맡긴 타락한 자의 목소리로, 사악하기는 해도,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C'était une rencontre prévisible puisqu'ils n'ont pas pu vous arrêter. C'était une période ennuyeuse pour attendre.
(그것들이 너희를 막지 못할 때부터 예견된 만남이었지. 기다리느라, 지루한 시간이었다)

  "C'est une surprise que tu ne te sentes pas nerveux. (조마조마하지 않았다니, 의외인 걸)"
  그러자, 미라가 바로 건물 내부를 향해 말을 건네었고, 이후, 건물 내부의 좌측, 우측 창가 너머의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이 다시 깜박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부에 도사리는 괴물이 그 빛을 자신의 두 눈으로 삼으려 하는 듯이.

Il n'y a aucune raison d'avoir peur de toi.
(너 따위를 두려워 할 이유가 있겠나)

  그 후, 건물 내부에서 괴물의 목소리 같은 음침하고 사악한 목소리가 바로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Ouais, je ne peux pas me cacher éternellement dans cette coquille. Il est temps de te montrer mon visage.
(그래, 언제까지 이 껍질 속에 숨어있을 수는 없겠군. 본 모습을 보일 때다)

  그 말이 끝나는 때에 무너지다 말았던 건물들의 벽면에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마치, 바스라지듯이 건물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외형이 무너지면서 그로 인해 바닥 일대에 먼지 구름이 일어나더니, 구름이 걷히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구름이 걷히면서 드러나는 온전한 형상은 마치 신전의 사당 부분과 제단을 연상케하는 금속 구조물로 제단 위에는 하늘색 혹은 연한 청록색 빛을 발하는 구체 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붉은 빛의 근원일 법한 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청록색 구체를 함대의 '조언자' 역할을 한 존재로 간주하고, 그 존재가 말을 건넬 때마다 구체가 붉게 깜박이는 것인가, 싶은 추측을 하기도 하였으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제단 앞에 어떤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생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Bienvenue, ravi de vous rencontrer.
(환영하지, 반갑다)

  목소리와 함께 연기 속에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존재, 높이만 해도, 내 키의 2 ~ 3 배 정도인 거인형 개체로 상반신은 인간의 검은 갑주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하반신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앞 부분은 사람의 하반신과 닮은 형태였으며, 뒷 부분은 말의 형상과 닮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갑주의 흉부 한 가운데에는 붉은 빛을 발하는 눈과 같은 부분이 자리잡고 있었고, 두 팔은 장갑을 덧대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자신의 높이 정도로 긴 물건으로, 끝 부분에 화려한 장식을 갖춘 금색 지팡이를 든 개체였다. 기사의 투구를 연상케하는 머리의 안쪽은 그림자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서 투구 안쪽이 비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갑주 각 부분은 가장자리 부분마다 금이 그어져 있었으며, 금들을 따라 붉은 빛이 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Maintenant que vous m'avez vu, sache qu'il n'y a aucune chance que tu reveniez vivant !
(내 모습을 보게 된 이상, 너희들이 살아서 돌아갈 길은 없을 줄 알아라!)

  "Est-ce là ta nouvelle forme ? (그게 네 새로운 모습인가?)"
  그 때, 갑주의 모습을 보더니, 미라가 그에게 이렇게 도발적인 발언을 건네었다. 그러자 갑주는 투구 사이에서 눈처럼 붉은 빛을 번뜩이면서 자신에게 도발적인 발언을 건네었을 미라에게 이렇게 답하려 하였다.

Oui, le nouveau corps de l'« Élu ».
(그렇다, '선택받은 자' 를 위한 새로운 육신이로다)

  그러더니, 자신을 도발했던 미라를 이렇게 도발하려 하였다.

La forme que les Villies comme toi ne pourront jamais imaginer... ! (너 같은 빌리는 상상도 못할 모습 말이지....!)

  "Tu veux dire Villie, cette fille, n'est-ce pas ? (빌리는 이 애를 지칭하는 말이겠죠?)"
  그러자, 클라리스가 바로 병기에게 물었고, 그러자 병기는 "En effet (당연하지)." 라고 답했다. 그러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Le fantôme d'une femme superficielle qui n'a pas su renoncer à ses désirs persistants pour la vie, c'est une Villie.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천박한 여자의 망령, 그것이 빌리다.)

  "천박하다고? 미라 씨가?" 이후, 그들의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을 세미아가 내게 물었고, 그러자, 내가 그런 세미아에게 이렇게 답했다.
  "적어도 저 작자에게는 그러하겠지." 그러자 내가 바로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한 때, 그는 나름 유명한 무용수였고, 자신의 동료였을 여성 무용수들과 친해질 기회를 얻었던 사람이었다고 그에 대해 밝혔으며, 함대의 중심체가 언급했던 '미라' 그리고 '소욘' 도 그 여성 무용수들 중 일부였다고 이어 언급하기도 했다.

C'était il y a longtemps. Un jour, alors que j'étais au sommet de ma gloire, une femme insignifiante nommée Mira m'a abordée.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어느 날, 영광의 나날을 누리던 내게 미라라는 하찮은 여자가 다가왔지)

C'était une femme immature qui convoitait ma gloire et souhaitait mener une vie noble à mes côtés.
(나의 영광을 쫓으며, 나와 함께 고귀한 삶을 살기를 바라기만 했던 철없던 여자였지)

À un moment donné, elle m'a induite en erreur. Cependant, j'ai fini par m'en débarrasser, et ensuite, furieuse, elle s'est suicidée.
(한 때, 그녀에게 현혹된 적도 있었지. 하지만, 결국 나는 그녀를 뿌리쳤고, 이후, 그녀는 발악했지만, 제 목숨만 날려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Plus tard, Mira a renaît sous le nom de Villie et m'a maudit avec des Villies, ce qui a détruit ma vie.
(이후, 미라는 빌리로 다시 태어나서는 내게 저주를 퍼부었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은 파멸하고 말았다)

  내가 바르차, 마르차 등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미라는 빌리로 다시 태어난 이래로 그 남자를 다시 만나거나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망령으로 다시 태어나 떠나간 곳은 남자 무용수를 만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으니, 남자 무용수에게 저주를 했다 한들, 그것이 무용수에게 닿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미라는 처음부터 남자 무용수를 노린 사람은 아니었다. 남자 무용수의 매력에 홀려, 그와 교제를 시도했지만, 남자 무용수는 그런 그의 마음을 이용하기만 하고, 바로 소욘이란 새로운 '먹잇감' 을 찾은 이후에 매몰차게 그를 내쳐버린 것이었다. 그러다, 알리치아라는 부유한 집의 자제를 노리다가, 파멸하는 자업자득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을 두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이용하고 내버린 미라 (그리고 소욘) 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Ça n'a aucun sens.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자, 클라리스가 곧바로 병기에게 이렇게 말하고서, 그에게 따지는 말을 이어 건네려 하였다.
  "Vous avez gâché votre vie par vos propres choix et vous blâmez les filles que vous avez cruellement sacrifiées pour votre seul plaisir.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망친 것을 두고, 당신의 쾌락을 위해 당신이 멋대로 희생시킨 소녀들 탓을 하시다니요)"
  그러나, 그가 그러하거나 말거나, 병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이어가고만 있었다.

Soÿone fit de même ; comme elle, elle tenta de profiter de ma gloire, puis mourut, et elle devint Villie et me maudit.
(소욘도 그러하였지. 그녀처럼 나의 영광을 이용하려다가 죽은 이후에 빌리가 되어 나를 저주했지)

Comme ils le souhaitaient, j'ai été détruit, et mon corps a été découpé en morceaux.
(그들의 바람대로, 나는 파멸했고, 나의 몸뚱아리는 조각나 버리고 말았다)

Mais ! Eilbe Messa, la seule chose dans l'univers, m'a regardé de haut et m'a donné un corps mécanique !
(그러나! 우주의 유일한 존재이신 엘브 메사 (Eilb Messa, 에일브 메사) 님께서 그런 나를 갸륵하게 보시어, 나에게 기계 몸을 하사하시었도다!)

Il ordonna : « Punis les fantômes qui ont foulé aux pieds mon destin par mon propre pouvoir et accomplis ma vengeance ! »
(그 분께서 명하셨다, 나의 운명을 짓밟은 망령들을 내 힘으로 벌하여, 복수를 완성하라고 말이다!)

  "Était-ce là votre pouvoir ? Il vous a été remis par une légion de machines. (그것이 당신의 힘이었나요? 기계 군단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일 뿐이잖아요)"
  그러자, 클라리스가 바로 반박하는 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병기는 그런 클라리스에게 "TAIS-TOI !!!!! (닥쳐라!!!)" 라 외치고서,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Tu fais du bruit pour un carquois d'un fantôme superficiel ! Tu mérites d'être mis en pièces !!!!
(천박한 망령의 끄나풀 주제에 조잘조잘 시끄럽게 구는구나! 사지를 찢어발겨 마땅할 것 같으니라고!!!!)

Maintenant, je vais TOUS VOUS broyer de mes propres mains. Seul l'enfer attend les Villie et ceux qui m'ont tout pris ! (이제 너희들을 내 손으로 갈아 마셔주겠다.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빌리와 그 끄나풀들에게는 이제 지옥만이 함께 할 뿐이다!)

  "Qu'est-ce que tu viens de dire ? (방금 전에 뭐라고 했지?)" 그 때, 가만히 병기와 클라리스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을 미라에게서 목소리가 나지막히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조용히 병기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려 하였으나, 결국, 클라리스를 '끄나풀' 이라 칭하는 것에는 참지 못한 것 같았다.
  "Carquois ? C'est ce que tu insinues à propos de cette fille ? (끄나풀? 저 애를 두고 하는 말이었나?)"

Tu ne sais pas encore à quoi elle ressemble ?
(저 애가 어떤 이인지 아직 모르겠다는 거냐!?)

Elle a hérité de l'épée d'un homme qui fut jadis roi des chevaliers ! Elle a grandi en héritant de son titre de seigneurie ! Il n'y a aucune raison d'être traité de superficielle !
(한 때, 기사왕이었던 남자의 검을 물려받은 이이다! 기사왕의 유지를 이어받은 자라고! 천박하게 칭해질 수 없다는 거다!)

Qu'elle le fasse ou non, ça n'a aucune importance. J'ai été choisie, j'ai évolué. Vous ne pouvez pas me vaincre !
(네가 그러하든, 말든 상관 없다. 나는 선택받았고, 진화했다. 너희들은 나를 이길 수 없어!)

Est-ce l'évolution que d'être piégé dans un amas de métal ? C'est comme ça qu'on aurait pu faire sauter toute la flotte avec le vaisseau amiral !
(쇳덩어리에 갇히는 것이 진화란 거냐? 저랬으니, 기함 채로 함대를 날려버릴 수 있었겠지!)

Est-ce aussi une forme d'évolution que d'autodétruire le pouvoir de ses alliés ?
(아군의 힘을 스스로 멸하는 것도 진화의 일종인가?)

  이후, 병기는 미라 (Myra) 에게도 도발의 말을 건네었으나, 그는 곧바로 병기의 말에 맞대응하고서, 역으로 도발까지 가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이 있었다면, 자신을 '빌리' 라 칭하며, 자신의 전생이었을 미라 (Mira) 그리고 그의 친구였던 소욘 (Soyon, Soÿone) 을 모욕할 때에는 가만히 있었던 그가 클라리스를 '끄나풀' 이라 칭하자마자, 그것에는 바로 반응했다는 것이었다. 그 만큼, 미라에게 클라리스는 더 없이 소중한 존재였던 것.
  "자신의 암흑과도 같은 운명에 빛을 전해 준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야."
  그것에 대해 내가 말을 하자마자, 아네샤가 바로 그것에 대해 그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서, 일행에게 이번 일은 두 사람에게 온전히 맡기도록 하자고 나를 비롯한 주변의 이들에게 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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