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lphid 4th - 2. Indaco e Sangue : 8


  "그 옛날에 하토먀코 (Hatomyako) 에 모여 있던 고양이 일족들, 황족부터, 신료들 그리고 신민들까지 수없이 기계 군단의 모함으로 끌려간 이들을 말함이지?"
  그리고 야누아는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없이 많은 이들이 하토먀코, 고양이 나라의 수도였던 곳에서 기계 군단의 모함으로 끌려갔으며, 그 이후에는 그들의 행적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며, 그들의 최후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견들이 있지만 모두 추측의 영역이라 자신은 어느 것도 믿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만, 기계 군단이 생명체의 존재를 말살하려는 집단이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은 부흥군이 그들의 항복 권고를 거절하고 그 사악한 세력을 하나라도 없애기 위해 자살 특공까지 감행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볼 때, 불행한 최후를 맞았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었다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기계 군단이 장악한 섬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던 이가 누구였던가?"
  그리고서 야누아는 아와레의 남쪽 먼 바다의 한 곳에 기계 군단이 장악한 섬이 있었으며, 그 곳에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말한 이가 있었으며, 그 이를 불러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클라리스는 리피라고 말하고서 리피를 야누아의 곁으로 불러왔다.
  "이제 기억났네, 리피라고 했었지." 이후, 야누아는 리피가 자신의 곁으로 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이제 기억났다는 듯이 말하고서 리피에게 섬 한 곳을 기계 군단이 장악하고서는 어떤 검은 기사와 더불어 기계 병기들이 외계에서 사람들을 불러와서는 죽이기를 반복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야누아의 앞으로 다가온 리피가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이후에 그 실상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가 나를 비롯한 일행 그리고 클라리스, 미라 등과 함께 섬으로 가면서 그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됐음을 밝혔다.
  "폐허가 된 섬의 한 곳에 의식장으로 쓰인 곳이 있었고, 그 한 가운데에 제단이 놓여 있었어요. 그리고 그 부근에는 해골들이 묻힌 구덩이가 있었고, 의식장 주변에는 혼령들이 나타나기도 했었어요. 수없이 많은 괴로움과 고통의 사념들이 빛의 방울 형태로 자리잡고 있기도 했었지요."
  "그랬겠지, 속아서 온 사람들을 그 녀석들이 가만 둘 리 없었을 테니."
  리피의 말에 야누아는 그러할만 했다고 화답한 이후에 검은 기사 그리고 그를 따르는 기계 병기들이 의식장의 제단에 사람을 올려놓고 죽이는 짓거리를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하고서 이에 리피를 대신해 클라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틀림 없어." 라고 답하는데, 그 목소리가 꽤나 심각했다.
  "그렇게 마구 죽이는 데에 무슨 이유라도 있었던 거야? 그것들이 사람 죽이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었겠냐만."
  "이유가 없지는 않았어." 이후, 야누아가 기계 군단에 대한 빈정거림을 드러내는 듯한 목소리로 물음을 건네었고, 이후, 리피가 클라리스의 좌측 곁으로 오자마자 클라리스가 야누아의 그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클라리스는 야누아에게 섬에서 기계 군단이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기사는 자신의 옛 연인을 되살리려고 했어, 이를 위해 사람들의 생명이 요구된다는 기계 군단 측의 이야기에 넘어가서는 기계 군단의 뜻대로 사람들을 마구 죽이기를 반복했었지. 그리고 검은 기사에게 그의 연인이라는 이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군단의 두목이 드러낸 환상이었고, 그 환상에 의해 검은 기사는 죽고 말았지. 그 환상은 군단의 두목이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검은 기사는 그저 군단의 두목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죽은 것이었을 뿐이었어."
  "그렇다면, 군단의 두목이 자신을 위해 사람들을 죽였다고 볼 수 있겠네, 그렇지?"
  "맞아, 의식장으로 가기 전에 혼령들을 만났었어. 검은 기사 그리고 기계 군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의 혼령이었지. 그들은 원래 그 곳에 있을 수 없었지만 간신히 밖으로 나와 나를 비롯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어. 그러면서 '토카막 (Tokamak)' 을 언급했어, 기계 군단의 심장이라 칭해지는 토카막 말야."
  그리고서 클라리스는 토카막에 혼령들이 갇혀 있었음을 밝혔으며, 수없이 많은 혼령들이 토카막에 갇혀 기계 군단의 두목인 존재의 심장인 토카막에서 플라즈마 (Plazma) 발전의 재료가 되고 있었음을 이어 밝혔다. 이후, 그는 다시 심각하게 목소리를 내어 기계 군단의 두목인 병기가 자신의 심장인 토카막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는 그 병기는 자신의 수하들로 하여금 그 시체들을 토카막 안에 집어넣도록 했겠지. 그리고 그 몸을 갈아내어 살과 피 그리고 뼈에서 생기를 뽑아내어 플라즈마를 생성하고, 더 나아가 영혼까지 끌어내어 영혼을 원소화하여 그 영혼을 플라즈마로 변질시켜 이를 원료로 토카막을 구동해 자신의 에너지가 되도록 하기도 했었지."
  "토카막이라고?" 사람의 살과 피, 뼈에서 플라즈마를 뽑아낸다는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누아는 그렇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기계 군단에 속한 기계 병기들 중 일부는 토카막의 플라즈마 발전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그 전력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토카막의 사람의 몸과 영혼을 재료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음이 그 이유라고. 그리고 바닷물에서 플라즈마를 뽑아내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런 짓거리를 이어가고 있음은 그들에게 있어서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의 육신과 그들의 영혼은 자신들에게 있어서 그저 전력 발전의 재료일 뿐임을 대외에 알리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계 군단의 포로로 잡혀간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서 야누아가 이어 말했다. 몸도 영혼도 기계에 속박되고 몸과 영혼이 해체당해 토카막의 플라즈마 생성 재료가 되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조용히 팔짱을 낀 채로 클라리스, 미냐 그리고 루미 등에게 심각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아테다르마에 자리잡은 녀석들의 두목 급에 해당되는 병기의 내부 혹은 그 인근에 있으면 고통스러운, 한스러운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먼 옛날, 포로로 잡혀갔을 고양이들의 영혼, 그리고 후세에 그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나섰다가 실종된 이들의 영혼들의 목소리이겠지, 아마도 그들은 지금도 이제는 오지도 않을 황제를 찾으며, 원망하며 울부짖고 있을 거야."
  그 무렵, 클라리스의 곁으로 다가간 엘피의 토카막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이에 그것에 대해 대략 알고 있었던 리피가 대답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려 하였다, 물질을 플라즈마화해서 그 플라즈마의 열기를 통해 기운/에너지를 생성해내는 발전 원리를 가지며 그래서 '플라즈마 발전기 (Generatore di Plasma, Plasmanazartrî)' 라는 이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을 이어갔고, 그 광경을 근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이후에 아네샤가 내 곁으로 오면 토카막에 관해 그렇게 설명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튼, 토카막이 파괴되면 영혼들도 풀려나겠지?" 이후, 야누아가 클라리스에게 질문을 하자 클라리스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고서 이전에 자신이 토카막을 파괴했을 때, 토카막 안에 갖혀 있던 수많은 영혼들이 빠져나와 에즈리스 대륙 쪽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영혼들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지는 오래일 거야, 영혼마저 물질화되어 플라즈마화된 이후에 융합과 해체를 거듭하다 보니, 본래의 특성을 잃은지는 이미 오래됐겠지."
  이후, 클라리스는 다소 씁쓸하게 목소리를 내어 말하고서 그래서 그 영혼들은 에즈리스 일대를 헤매다가 그 이후에는 여러 행성계를 전전하면서 소멸하거나 정령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고 말하고서, 이들이 세니티아 성계권에 이르러 정령으로 탄생하는 것이 가장 운이 좋은 경우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서 클라리스는 주변 일대를 둘러보다가 나를 보더니, 나를 불렀고, 그 부름에 내가 응해 그의 곁에 이르자마자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른 세계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이 세니티아에서 정령으로 환생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나요?"
  세니티아, 베라티사, 조하르, 아르데이스 등을 비롯한 세니티아 성계권 혹은 세니티아 성역에서는 다른 세상에서 건너 왔을 죽은 이들의 영혼이 정령으로 재탄생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 경우가 제법 많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계를 떠도는 다른 영혼들과의 상호 작용을 겪고, 영혼 간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그 영혼이 원래의 특성을 모두 갖고 정령으로 태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나는 클라리스의 질문에 답했다.
  "상당히 많다고 알고 있어요, 이외에도 조하르라든가, 아르데이스 등에도 그렇게 태어나는 정령들이 많다고 하지만, 원래의 인격을 그대로 갖고 태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원래의 인격을 그대로 갖지 않고 태어나는 것이야, 정령들에게는 당연한 사항이겠지요, 원래의 인격을 그래도 갖고 태어나더라도 기억 자체는 없을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태어나는 정령들이나 요정들 중 대다수는 영혼이 가졌을 원래의 삶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알아요."
  이에 리피가 나의 곁으로 날아와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정령들이나 요정들의 인격에 본 바탕이 있다고 한들, 그 전생에 해당되는 존재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정령들, 요정들의 삶과는 사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이후, 아네샤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그는 내 곁으로 오자마자 곧바로 나에게 무엇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느냐고 물었고, 이 물음에 내가 답으로써 섬을 장악하고 있던 기계 병기의 심장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음을 밝힌 이후에 심장은 토카막이라 칭해지는 동력원으로 기계 병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영혼이 해체당하며 플라즈마 생성 재료가 되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먀미아 성계에 있는 아테다르마라는 산악 지대의 일부를 그와 같은 특성을 가지는 병기가 장악하고 있으며, 그 곳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고 이어 밝히기도 했다.



  야누아는 먀미아 성계에 관한 남은 이야기는 먀미아 성계에서 먀미아 성계로 간 이들에게 하겠음을 밝히고서 다시 찻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클라리스 등의 일행 역시 그를 따라 이전에 나를 비롯한 이들이 잠시 떠나갔을 찻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나 역시 그들을 따라 나섰다. 클라리스, 루미, 미냐 등의 일행은 찻집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라니아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고, 나 역시 아네샤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찻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
  이후, 라니아는 레미스와 나누어서 일행이 주문한 차들의 값을 치르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행 모두 찻집을 떠나기로 하면서 나와 아네샤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찻집을 떠나 다시 밖으로 나갔다. 찻집을 나가자마자 야누아는 잠시 갈 곳이 있다면서 동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떠나갔고, 클라리스는 남쪽의 선착장 부근에 있을 리에타 그리고 미라를 찾으러 가기 위해 남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라니아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고, 미냐와 엘피 그리고 루미는 서쪽의 나무들 그리고 나무들 위의 집들이 모인 곳으로 가려 하였다, 엘피의 집으로 가려 하였다고.
  레미스는 리피와 더불어 나와 아네샤의 곁에 남았다, 레미스는 나와 아네샤의 모습을 보면서 세니티아 정령들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고 하며, 우선 나와 아네샤에게 이름을 알려달라 말했고, 더 나아가 나를 비롯한 정령들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고 말했다.
  때마침 나에게는 목욕할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레미스에게 공중 목욕탕 같은 곳이 있느냐고 묻자, 레미스는 자신의 집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하고서 자신의 집은 아와레의 남부 교차로 서쪽의 광장에 자리잡은 탑을 기준으로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간판에 XV 라 쓰여있는 곳임을 밝혔다, 광장 남쪽 구역의 15 번째 집임을 의미한다고. 그리하여 나와 아네샤는 목욕할 곳을 마련해 주겠다는 레미스를 따라 그리고 리피와 함께 교회로 쓰이는 커다란 나무를 지나 남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어 남부 교차로에 이르렀다. 리에타의 공방 그리고 클라리스의 집이 근처에 위치한 교차로에서 일행은 레미스, 리피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여러 집들이 길 위로 자리잡은 풍경을 처음 아와레에 이른 이후, 하루 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집 내부는 일반적인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관의 우측에 욕실이 있었고, 건너편에 안방의 문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좌측에 주방과 식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욕실을 보자마자 나와 아네샤 중 누가 목욕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생겼고, 그래서 욕실 앞에서 서로 마주보며 가위 바위 보를 했다.
  "가위! 바위! 보!" 누가 목욕을 먼저 하는 것 정도로 진지하게 승부를 볼 필요는 없었고, 그래서 간단하게 승부를 냈다, 서로 암묵적으로 손을 내밀 시간을 정했으며,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결과는 내가 가위, 그리고 아네샤가 보라서 내가 먼저 목욕을 하게 되었다.

  방 전체가 새하얀 타일로 뒤덮여 새하얀 색을 띠는 욕조는 욕실 내부의 끝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욕조 역시 방의 전반적인 색깔에 맞춰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욕조의 왼편에 수도꼭지가 있어서 그 수도꼭지를 통해 욕조의 물을 채울 수 있었으니, 바로 욕조를 이용해 욕조의 물을 채웠다. 적당히 물을 채우고 난 이후에 그간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 물이 차가웠지만 이런 차가운 물에 한 번 두 번 들어간 것은 아닌지라 그리 낯선 경험은 아니었다.
  물에 들어간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심심해서 오른 다리를 높이 들어보기도 했다. 딱히 생각난 것이 없었고, 그저 차가운 물 속에서 시원함과 차가움을 느끼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딱히 장난감 같은 것도 없는 욕조에서 심심해지면 레미스는 욕조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려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릴 없는 의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가 수면 아래로 잠시 잠겨 있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고서 욕조에 앉았다. 욕조가 상당히 깊어 앉아 있어도 허리 바로 위까지는 물에 잠길 정도였다. 처음에는 물이 상당히 차가운 편이었지만 오래 앉아있다보니 적응이 됐다. 계곡 물에 들어갈 때마다 늘 그러하였고, 그 때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라르나, 물은 어때? 차가워?" 다시 앉을 무렵, 욕실 건너편에서 아네샤의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 물음에 나는 "차갑지만, 적응하면 괜찮을 거야!" 라고 답하고 이어서 계곡 물과 비슷한 수준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네샤는 알았다고 답을 하고 욕조의 물에 관해 나에게 더 묻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네샤의 물음은 이어지고 있었으니, 이번에는 레미스에게 물을 따뜻하게 하는 경우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레미스는 욕조의 물을 따뜻하게 할 수단은 있지만 굳이 그런 수단을 사용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레미스 역시 차가운 물에 더 익숙하기는 했었던 모양.

  그 이후로 한 동안 별 생각 없이 욕조의 물 속에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 이후, 나는 비누로 몸을 닦아내고, 물로 몸을 씻어낸 이후에 적당히 수건으로 몸을 문질러서는 사전에 빨았던 옷을 마법으로 말려내서는 다시 갖춰 입었다. 그 이후, 나는 욕조를 다시 비우고 욕조가 비워졌음을 확인하자마자 욕조를 씻어내고서야 욕조 밖으로 나갔다. 욕조 앞에서는 이미 아네샤가 목욕을 기다리고 있었던 만큼, 바로 밖으로 나갔고, 이후, 아네샤가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나는 거실로 가서 식탁에 리피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으면서 무언가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던 레미스를 향해 다가갔다.
  "무엇에 관해 그렇게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 받으시고 계셨던 거예요?"
  이후, 내가 리피의 오른쪽 옆으로 다가가서 레미스에게 묻자, 레미스는 다음에 무엇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막 화제를 바꾸던 참이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에 북부 교외의 어떤 곳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었다고 이어 말하기도.
  "북부 교외에 가 볼만한 곳들이 있는가 보네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레미스가 그렇다고 말하고서 대표적인 곳으로 북부 교외 지역에 고문명 지대가 있음을 밝혔다. 초고대 문명 지대의 도시로 추정되는 곳으로서 실제로 재가공하면 충분히 활용할만한 금속 및 비금속 자원들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어서 리에타를 비롯한 대장장이들이 자원 확보를 위해 자주 들르기도 하는 곳이라 말하기도 했다. 금속 자원들은 정제 및 재가공을 해서 광석으로 다시 만들어내고, 비금속 자원들은 마나로 변환시킨 후에 마나 광석으로 정제하며, 마나 광석은 마과학 제품에 쓰이는 주요 자원이라 활용 가치가 높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에타 씨는 마나 광석 정제에 관심을 갖고 있나요?"
  "리에타는 마나 광석 정제는 별 관심 없는 애예요, 마나 시약 활용은 많이 하기는 하는데."
  고문명 유적으로 초고대문명의 도시로 추정되는 곳이라 하니, 어떠한 곳일지 대략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세니티아 성계의 아르나이 (Arnay) 평원 일대에 이와 같은 유적지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르나이 평원의 도시 유적지 내에 수많은 금속, 비금속 골동품들 및 폐품들이 매장되어 있었고, 이 금속, 비금속 유물들 중에 귀중품으로 보이는 것들을 비롯한 일부는 보존되지만 대다수의 폐품들은 자원으로 활용된다는 것도 아와레의 도시 유적지와 거의 비슷했으니, 비금속 유물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대략 알 수 있었다.
  "이런 자원들도 언젠가 고갈되겠지요?" 그 무렵, 리피가 레미스 그리고 나에게 물었지만 레미스는 아와레 사람들의 수에 비하자면 자원의 양은 거의 무한에 가까울 것이라 말하면서도 주의해야 할 필요는 있음을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골동품들의 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음을 밝히고서 끊임 없이 발굴되는 골동품들의 수를 통해 현재의 아와레만한 넓이의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와레 일대에서 발견된 고문명의 유물들은 주로 어디에 보관되나요?"
  고문명의 유물들 중에서 중요하다고 여기어지는 것들, 주로 귀중품이나 서책, 보관소 매체가 있을 것이다. 이들이 보존되고 있다면 이들이 모여있는 곳이 분명 있을 것이라 여기었고, 그래서 그 장소에 대해 레미스가 어는지 여부를 물었던 것이었다.
  "서부 광장의 도서관 지하에 보관되어 있어요. 워낙 귀중한 물품들이다보니, 열람을 위해서는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가 있지요."
  이 물음에 레미스가 나름 상세히 답을 하고서 만약에 도서관에 간다면 자신이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으며, 그러면서 자신은 지하 보관소에 열람할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 무렵, 아네샤 역시 밖으로 나갔다. 그 역시 목욕을 마치고서 옷을 다시 갖추어 입고 나왔다. 이에 레미스는 자기 차례가 왔다고 여기고는 욕실로 들어가려 하였고, 이후, 리피가 레미스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체구가 작은 만큼, 같이 들어가도 괜찮다고 여기었던 모양으로 이후, 이들의 목욕 차례가 시작되었다.
  "아네샤, 목욕은 잘 했어?"
  "물론, 물이 네가 말한 대로 다소 차갑기는 했지만 엘젠의 폭포, 시냇물 정도는 되어서 문제는 없었어."
  이 물음에 아네샤는 환하게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아네샤가 한창 목욕을 하고 있을 즈음에 레미스와 잠시 대화를 했었음을 밝히고서 북부 교외에 도시 유적들이 있으며, 유적에 수많은 폐품들과 골동품들이 매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르나이처럼?" 이에 아네샤가 바로 아르나이를 거론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매장된 대다수의 폐품들이 재활용되고 있는 것도 같냐고 묻자, 나는 그러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골동품들은 아와레 중앙 도서관의 지하 보관소에 보존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음을 밝히고서 레미스가 보관소 출입 자격을 갖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음을 이어 밝혔다.
  "그 자격을 가지고 통과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같이 들여보내기도 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레미스가 가자고 하면 같이 가 볼 것이냐고 묻자, 아네샤는 "가 봐야지!" 라고 화답했다. 그 무렵, 나의 소정령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더니, 하얗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마녀로부터의 연락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이라 나는 바로 소정령 간 통신에 응했다.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네요, 잘 지내셨나요?"
  "잘 지냈어요, 그 동안." 이 물음에 나는 그간 잘 지냈다고 바로 답했다. 이에 마녀는 자신도 나와 아네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잘 지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대로 잘 지내서 다행이라고 말한 이후에 나와 아네샤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앞으로의 행선지는 이미 정해 놓으신 것 같아요."
  "맞아요, 먀미아 성계예요." 이 물음에 내가 바로 그렇다고 답하고서 먀미아의 아테다르마 대계곡에 자리잡은 기계 요새로 나아갈 예정임을 밝혔다. 섬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부류의 기계 병기가 아테다르마의 산악 지대 한 곳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곳 역시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고 먀미아 성계의 아테다르마로 가려고 하였던 그 이유를 알려주려 하였다.
  "그렇군요, 저도 아테다르마 일대에 거대한 기계 병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곳의 사정 역시 좌시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르사나 씨께서도 그 쪽으로 가시기로 하셨네요."
  "예, 그렇게 되었어요." 이후, 자신의 뜻과 내 뜻이 서로 맞았음에 대한 감탄을 드러내는 듯한 마녀의 목소리에 화답한 이후, 마녀의 목소리는 나에게 인간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장차 성계들의 위협이 될 요소를 제거하는 일인 만큼, 노력해서 성사를 이루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알겠어요." 이후, 마녀의 목소리는 그간 지켜본 사항을 통해 나 그리고 아네샤와 동행하는 이들도 있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고, 이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바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양이 용병들이 요새로 간다고 했었어요, 신디 자매였었지요. 그들 중 장녀인 야누아 신디 씨께서 아와레에 오셔서 클라리스 씨께 동행을 요청하신 것으로 알아요."
  "그랬었던가요." 이에 아네샤가 놀라면서 소정령을 바라보며 물었고, 마녀는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라 말하고서 클라리스가 같이 가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먀미아 선주민들에게 기계 병기들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도록 하기 위해 야누아가 동행을 권하는 것 같아 보였다고 나와 아네샤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리스 그리고 야누아 등이 언제 먀미아 성계의 아테다르마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아는 바는 없는 상태였다.
  "그 분들께서 언제 출발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 분들께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제가 추측하는 바로는 오는 저녁에 먀미아 성계로 가실 것임이 유력해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니......"
  다만, 그들은 먀미아 성계에 이르자마자 바로 아테다르마로 가지 않고 마냐하타에 들러 그들과 친분이 있는 이들 그리고 신디의 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마냐하타로 우선 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더욱 확실한 추측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먀미아의 선주민들로는 어떤 이들이 있나요?"\   그 이후, 이번에는 아네샤가 마녀에게 먀미아의 선주민들로는 어떤 이들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마녀는 우선 먀미아 성계는 알바레스 (Albares) 라는 이름의 일행이 머무르고 있던 성계의 근방에 있는 곳으로 오래 전부터 먀미아에는 여러 수인 종족들 그리고 정령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밝히고서, 수인 종족들은 옛 세니티아 (Senitia) 문명 하에서 수인화된 이들의 후손이고, 정령 종족은 루마 (Luma) 제국이라는 이름의 인류 제국에 거주하는 인류의 후손으로서 먀미아의 영기를 받아서 정령화된 이들이라 하였다.\   "루마 제국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나."   그 때, 아네샤가 나에게 루마 제국이라는 이름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음을 밝혔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행성계 상공에 자리잡은 부유 대륙들을 무대로 존재하고 있던 옛 나라로서 어떤 행성계의 인류가 행성에 드리워진 전염병 재앙을 피해 이주한 행성의 부유 대륙에 인류가 건설한 나라들을 통합하며 세워진 제국이라 하였다.
  "지상에도 대륙이라든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았을까."
  "그랬겠지만....... 아무래도 루마의 인류는 지상에 머무르면 전염병에 감염된다는 두려움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 같아."
  루마의 인류는 어떤 경우에도 지상에 머무르지 않았다고 한다. 전염병에 대한 깊은 공포에 사로잡힌 채, 거대한 우주선에 몸을 맡겨야 했던 그들은 오랜 방황 이후에 발견한 황무지나 다를 바 없었던 부유 대륙을 바로 차지했고, 부유 대륙을 자신들이 거주하던 곳과 비슷한 환경으로 변화시키면서 부유 대륙에 거주하게 되었던 것,
  "아네샤 님의 말씀대로예요. 루마 인들은 선조들을 괴롭힌 전염병에 대한 깊은 공포를 이어받고 있었고, 그래서 섣불리 지상으로 내려가지 못했지요. 그래서 그들의 무대는 루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부유 대륙과 그들이 하늘 위에 건설한 인공 구조물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를 자신들의 만든 울타리 혹은 새장 안에 가두어 놓은 셈인 것이네요."
  "그렇지요."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말에 마녀가 바로 답했다. 아네샤는 루마 인들의 부유 대륙을 떠나지 않았던 행보에 대해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우리 안에 가두어 놓은 동물들의 행동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인다고 여기었으며, 만약에 루마 제국의 시대에 루마 인들을 실제로 만났다면 이러한 행태를 비웃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루마 제국 멸망 이후에도 부유 대륙에는 여러 나라들이 번성했으며, 이 나라들이 자리잡은 행성계는 루마 제국의 옛 강역이었다고 해서 루마 행성계라 칭해졌다고 한다. 먀미아의 정령들은 그 루마 인들 중에서 대륙 서부의 프랑세 (Françai, Frãse) 왕국 그리고 이스파냐 (Ispaña, =ispanya) 왕국에서 온 이들이었으며, 정황 상 왕국들이 멸망하면서 살 곳을 찾아나선 이들이 먀미아의 동부 해안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루마 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살기 위해 먀미아 성계의 지상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그들이 먀미아 선주민들의 조상이 된 것이지요."

  이후, 마녀는 먀미아 선주민들인 정령들 중에서 아테다르마 요새의 사정에 가장 관심이 많은 이들은 동부 해안에 자리잡은 마냐하타 부족의 부족민들로서 부족장이 아테다르마에 자리잡은 기계 병기들이 뿜어내는 어둠의 힘을 경계하고 그 힘의 배제를 위해 움직일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이어서 야누아 신디를 비롯한 신디 자매가 마냐하타 부족민들 그리고 부족장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와 아네샤에게 전하기도 했다.

  "마냐하타 부족의 족장은 어떤 사람일까?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 번 만나보고 싶어."
  "좋은 일일 거예요, 부족장님께서는 좋은 분이시고, 신디 자매 분께 그러하셨듯, 라르나 님, 아네샤 님께도 좋은 정보를 전해 주실 거예요."
  이후, 마녀는 소정령을 통해 전하는 목소리를 통해 이제 목욕하던 이들의 목욕이 끝날 것 같다고 말하고서 대화는 이 정도로 마무리를 짓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소정령이 사라지고 마녀와의 대화가 끝날 무렵, 욕실의 문이 열리면서 다시 옷을 제대로 갖춘 레미스 그리고 요정 리피가 열린 문을 거쳐 거실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집에 온 이상, 아침 식사는 하시고 가세요."
  이후, 레미스는 주방으로 나아가려 하면서 자신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음을 밝히고서 간소하기는 하겠지만 잘 먹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작은 냉동고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꺼내서 주방의 받침대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레미스가 올려놓은 것들은 토마토 (Tomato), 포도 (Mer), 망고 (Mang'o), 양배추 (=ayaïf) 들이었으며, 이들을 칼로 갈라서 접시에 올려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들에 대해 물어보니, 요정들이 뜰에서 키운 것들을 구해 온 것들로서 아침마다 한 개씩 꺼내서 먹는다고 하였다. 포도는 송이에서 따서 알알이 접시에 담고, 토마토는 8 등분해서 접시마다 몇 조각씩 올려놓았으며, 망고도 그렇게 했다. 과일과 채소들을 그렇게 올려놓은 이후에 마지막으로 양배추를 채 썰어서 그 옆에 올려놓는 것으로 접시를 채웠다.

  "늘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고 계신가 봐요."
  이후,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됐을 때, 내가 포크로 토마토를 집어 먹으면서 건너편, 그러니까 주방을 등지는 방향에 앉은 레미스에게 묻자, 레미스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와 아네샤를 바라보면서 바람의 정령들은 평소에 어떻게 식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딱히 다르지 않기는 해요, 주로 배추, 상추라든가, 당근, 감자 등을 많이 먹어요. 세간에 알려진 바처럼 고기를 늘 먹거나 하지는 못 해요."
  "고기를 먹을 때는 있다는 것이지요?" 그 물음에 아네샤가 답을 한 이후, 레미스의 왼쪽 옆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리피가 묻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기회가 자주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미스 씨께서는 육류 식사는 전혀 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이후, 내가 레미스에게 묻자, 그는 평소에는 그렇게 한다고 말하고서 집에 요정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서 그렇게 되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때로는 구해 온 채소들을 구워먹기도 하며, 감자 류를 굽거나 기름에 튀겨서 먹을 때도 있다고 말하고서 감자를 튀긴 것은 누구나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구마나 감자는 튀겨 먹으면 맛있잖아, 그렇지 않아?"
  "그렇지."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내가 동의를 드러내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아닌 것이 아니라 한 번은 농장에서 일한 대가로 감자와 고구마 몇 개를 가져와서는 채 썰어서 아네샤, 나리 (Nari), 리마라, 세미아 등과 함께 튀겨 먹었는데, 다들 맛있게 잘 먹었던 기억이 있었으며, 그래서 한 번씩 감자 농장에서 일해서 감자들을 얻어다가 감자를 튀겨 먹고는 했었다. 힘들게 일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을 구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바람의 정령 분들께서도 그런 요리는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그럼요." 이에 아네샤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이에 레미스는 언젠가 나를 비롯한 바람의 정령들이 오면 이것저것 튀겨서 대접해 줘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그 때, 아네샤가 나에게 당근 튀김 맛있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그랬다고 답했다. 그리고 튀겨서도 맛 없었던 것 있지 않았느냐고 물으려 하지 않았느냐고 그에게 질문의 의도를 물으려 했고, 이어서 시금치 류는 조금 맛없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적당히 식사를 마친 이후, 레미스는 그릇들을 정리하고서 나와 아네샤에게 도서관으로 가겠음을 밝히고서 도서관은 도시의 서쪽 광장에서 동쪽 구역의 한 지점에 자리잡고 있으며, 광장 인근에 있는 건물들 중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기에 그 모습을 보면서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임을 밝혔다. 이후, 레미스가 리피를 데리고 앞장서서 집을 나서고, 이어서 나와 아네샤가 그 뒤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갔다. 나를 따라 아네샤가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레미스는 바로 문단속을 하고 다시 앞장서서 도서관 건물이라는 서부 광장 동쪽의 큰 건물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타 건물들처럼 목조가 아닌 돌을 쌓아서 만든 튼튼해 보이는 건물로서 나무로 건물을 짓는 것을 선호하는 고양이 여인들과 요정들도 도서관의 중요성은 확실히 깨닫고 있었는지, 벽돌을 쌓아가며 아주 튼튼하게 지었다고 했다. 무려 3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로서 규모에 비해 많은 서적들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아서 빈 공간이 많고, 그래서 휴식 공간으로 개조한 곳도 적지 않다는 모양. 입구는 건물의 서쪽 방향, 광장과 마주하는 부분의 중앙 즈음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입구의 크기가 커서 세 사람 정도는 나란히 들어갈 수는 있어 보였다.
  "이 쪽으로 따라 오세요." 리피와 함께 먼저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면서 레미스가 뒤따라 가던 나와 아네샤에게 말했다.
  "여기가 도서관의 정문인가 봐요." 레미스의 지시를 따라 도서관의 문을 향해 나아가면서 아네샤가 레미스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남문과 북문도 있지만 정문은 아니고, 평상시에는 수시로 닫아두는 편이라 자주 이용할 곳은 아니라 말하기도 했다. 이후, 레미스와 리피의 뒤를 따라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폭이 넓고, 높기도 해서 여유롭게 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도서관의 현관 구역은 여타 큰 건물의 현관 구역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양 측면의 벽에 유물 같은 물품들이 돌로 만들어진 전시대라 칭해지는 받침대 위에 놓인 유리로 만들어진 상자 형태의 칸막이 안에 고대의 도서들 그리고 기록 매체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펼쳐진 책의 형태를 통해 고문명 시대에 어떠한 글자들이 쓰이고, 어떻게 글이 쓰여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고문명 시대라고 했지만 기록물 중 대다수는 현 시대의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기록들은 그러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이러한 글자들이 쓰인 책들은 글 내용을 알아볼 수 없었다. 기록 매체들도 있었고, 그 기록 매체들의 상태는 온전했지만 레미스에 의하면 그 내부 상태의 온전함까지는 보장하지 못 한다고.
  현관의 입구 건너편에는 문이 하나 또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문을 지나야 도서관 내부의 본 전시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레미스는 우선 전시실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면서 현관의 문고리를 잡아서 문을 연 후에 그 안으로 들어가고, 이어서 리피가 그 뒤를 따르자 나와 아네샤 역시 그런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섰다.
  "전시실에는 책들도 많이 있지만 글을 기록하기 위한 기록 매체들도 적지 않게 전시되어 있어요, 고문명이 발달하면서 책을 대신하기 위한 기록 매체들의 생산도 꾸준히 이루어져 어느새 그 수가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비록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비하면 적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리피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지에 대한 기대감에 잠시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전시실 내부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층마다 거대한 공동이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건물의 가장 높은 곳, 그 한 가운데에는 천장이 뚫려 있어 그 너머로 하늘과 그 위를 지나는 태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태양의 눈부신 빛이 창 안에 내리며 도서관 특유의 공기와 만나 하나의 빛 줄기를 이루고, 또 공동의 끝인 1 층의 바닥에 새하얀 빛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1 층의 가장자리를 비롯한 2, 3 층의 공간 가장자리에는 여러 책장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전에 들은 바대로, 책장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2 층의 동쪽 공간은 한 부분에 간이 찻집이 자리잡고, 그 근처에 여러 탁상들이 놓여 있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다가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려 하였던 모양. 다만, 간이 찻집 공간의 경계에는 유리벽 사이에 자리잡은 검문대 같은 것이 있었으니, 책을 함부로 갖고 들어갈 수 없도록 설치된 장치의 일종인 듯해 보였다.
  "이 곳의 사람들은 허가 없이 책을 들고 찻집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것은 있으니까요."
  해당 장치에 대해 레미스가 말했다.
  2 층의 공간은 1 층과 마찬가지로 몇몇 고양이 여인들 그리고 요정들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책을 읽고 있었으며, 일부는 탁상에 모여 앉아 조용히 자기들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명색이 도서관인 만큼, 조용히 있을 필요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 곳은 작은 소리로나마 자유롭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2 층의 찻집에는 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으며,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도서관은 고문명의 서적과 유물을 보관하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으로 수많은 책들을 전시, 열람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넓게 지어졌지만 막상 에즈리스, 아와레 지방에 도입된 현 시대의 도서 개수가 워낙 적어 일반적인 도서관으로서는 제 역할을 잘 해내지는 못하고 있으며,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그래서 베라티사 (Beratisa) 의 도서관에 보관되고 있는 성계들의 역사서나 아와레, 에즈리스 등에는 알려지지 않았을 성계의 각종 이야기 책 및 여행 안내서 등의 사본을 제공 받아 장서의 수를 늘릴 계획도 세우고 있지만 사본을 작성하는 일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라 당장에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하기도.
  "우선 번역하는 것부터 일일 테니까요, 그렇지요?"
  이에 아네샤가 전시실의 한 가운데에 있는 빛 속에 있으면서 그 주변 일대를 거닐고 있던 레미스, 리피에게 묻자, 리피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1 층의 북쪽-입구 방향에서 왼쪽-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책장들 중에서 가운데 쪽의 책장에 자리잡은 책들을 향해 다가가서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커다란 책장이 전부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단어 사전도 있었고, 이야기 책도 있었으며, 글라이더 류나 차량 류를 비롯한 각종 기계들에 관한 책들도 다수 있었다. 과학 분야에 관한 두꺼운 책도 있어서 책에 기록된 언어의 한계만 극복할 수 있으면 한 동안 머무르며 책을 열람하는 재미를 느껴볼 수도 있어 보였다. 이 정도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책을 읽어가며 나름의 지식을 쌓아가기에 좋은 공간일 것 같았다, 베라티사의 도서관은 규모의 방대함과 더불어 수많은 전문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자랑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이런 방대함은 오히려 나 같은 이들에게는 크나큰 부담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쓰인 책은 주변에 거의 발견하지 못했기에, 책을 읽고 싶어도 책들이 꽂힌 모습을 잠깐 보고, 몇 권의 책들을 책장에서 가져와 책에 글자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잠시 보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고, 아네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네샤는 책에 쓰인 글자들을 대충은 알아서 조금은 알음알음하며 읽어가는 듯해 보였지만 그 역시 한계는 분명했고, 결국 나와 아네샤 모두 책 열람을 대충 그만두고 1 층의 북쪽 책장들 근방에 자리잡은 탁상들 근처에 있었다.
  일행의 목적은 도서관에서 책을 열람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 1 층의 고문명 유물들을 찾아가는 것이었으므로 도서관 1 층을 둘러보는 것은 대충 마무리하고 레미스, 리피를 따라 다시 전시실 밖으로 나갔다. 그 후, 레미스는 전시실의 정문에서 나오는 방향에서 오른쪽 방향-입구에서 왼쪽 방향-에 자리잡은 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며, 리피가 그런 그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들을 따라 아네샤와 함께 문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천장과 벽면에 자리잡은 마력 등불의 빛으로 인해 지하로 들어서는 계단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도서관에 들르면 일단 어떤 책들이 소장되어 있는지를 둘러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겠지만 도서관이라면 보다 작기는 해도 고향인 루샤트에도 있었고, 소장된 책들의 종류 역시 루샤트에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장된 책들의 수 역시 루샤트의 도서관에 비해 그렇게 많지도 않아 보였던 것이, 루샤트의 도서관은 작기는 해도 책장마다 책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 그 대다수가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라고는 해도.
  마치 달팽이의 무늬와도 같은 계단의 길, 내려가는 방향은 역 시계 방향으로 그 방향을 따라 계단을 내려간 끝에 거대한 문의 바로 앞에 이르렀다. 굳게 잠겨 있던 문의 오른쪽 근처의 벽면에는 계기판처럼 생긴 검은색을 띠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으며, 장치의 하단 부분에는 여러 종류의 버튼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상단에는 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매끈한 유리판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단에 있는 버튼들은 표면에 글자로 추정되는 문양(Glyfa) 들을 빛내고 있었으며, 그 빛이 밝아 주변 일대를 비추는 빛의 역할도 해 주고 있었다.
  "이제 이것을 꺼내야 하겠군요." 장치의 바로 앞에 이른 레미스가 치마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팔찌로 레미스는 그 팔찌를 오른팔에 걸고 팔찌의 한 부분을 유리판 근처에 가까이 대었다. 그러자 기계 장치 특유의 '삐-'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우측 부분에서부터 마치 막이 걷히듯이 열리며 그 너머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아, 이제 저를 따라 들어가시면 될 거예요." 이후, 레미스는 자신이 오른팔에 차고 있던 팔찌를 다시 치마의 오른쪽 주머니 안에 넣어두고서 열린 문 너머로 발걸음을 옮기었으며, 나와 아네샤가 그런 레미스의 뒤를 따라 나아갔다.


  지하 공간은 1 층의 공간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넓었으며, 그 넓은 공간의 한 가운데와 네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큰 기둥 주변에 고대 유물들을 전시하는 네모난 전시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하 공간의 천장과 벽면 그리고 기둥에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마력 등불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빛을 내고 있었지만 각각의 불빛은 어두운 공간을 환하게 비출 정도로 밝지는 않았고, 그래서 내부 자체는 기둥이나 전시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두운 편이었다. 어둠 속에 별빛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기둥을 에워싸고 있던 전시대들 역시 빛을 내고 있었지만 어둠을 비출 정도로 밝은 빛은 아니었으며, 전시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도의 밝기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 곳은 빛을 함부로 발하면 안 되는 곳이에요, 요정들 역시 함부로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요."
  공간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레미스가 주의 사항에 대해 말했다. 빛을 내지만 않으면 되는 만큼, 깊이 조심할 사항은 아니라고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인 만큼, 공간 내부로 들어서면서 날개만큼은 감추었으며, 아네샤 역시 그렇게 했다. 리피 역시 날개의 발광을 줄여 날개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빛을 최소화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나요?"
  "빛이 해당 유물들의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래요."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중앙의 기둥을 향해 나아가던 레미스가 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아네샤는 바로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오래된 책은 가급적 빛에 오래 노출시키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 이후에 이어서 이렇게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
  "오래된 책은 빛에 노출되면 글자가 바래지거나 책장의 상태가 나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같은 원리로 빛의 노출을 최소화시키려 하는 것 같아."
  글자가 쓰여지거나 찍혀지기 위해서는 잉크 (Sepia) 가 필요하다. 잉크는 빛, 특히 햇빛을 받으면 점차 바래지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오래된 도서들을 관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햇빛은 보통 성가신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색을 띠는 유물들 중 다수는 색의 재료가 빛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 해당 유물들을 일부 관리자들 역시 빛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한다. 도서나 물품 류는 일상에 흔히 쓰이고, 이들 역시 햇빛 등에 많이 노출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대에 쓰이는 것들이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과 달리, 유물들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 복원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아예 복원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손상 이후 복원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유물들을 관리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빛의 존재는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금속 광택을 띠는 원반들이 간혹 발견되고는 한다, 이들은 원래 기록 매체들로서 글과 그림 등에 관한 정보들이 빛에 의해 원반에 그 흔적이 남겨지는 듯이 기록된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빛과 가장 가까울 법한 이 원반들은 역설적이게도 빛에 노출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었으니, 기록의 흔적을 변이시키고 지우는 것이 빛이라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빛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 빛에 의해 지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서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역설이냐' 라고 어이 없다는 듯이 반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설이 나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반들을 빛에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소중히 보관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빛에 의해 원반에 남겨진 흔적이 변이되고 흐트러질 수 있는 요인은 빛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원반에 남겨진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기도 하다보니, 굳이 큰 노력을 들어가며 원반을 소중히 보관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하실 입구의 바로 앞에 자리잡은 전시대 앞에 이르는 나의 눈앞에 유리 칸막이에 감싸인 유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희미한 보라색 빛에 감싸인 칸막이 안에는 검은 유리판 하나, 검은 테두리를 가진 유리판 하나가 잠들어 있었다. 유리판의 우측에는 버튼의 일종으로 보이는 검은 원이 하나 보이고 있었으며, 유리판의 표면에는 크게 금이 가 있어서 모종의 이유로 심하게 파손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검은 유리판은 방금 전에 보았던 기계 장치의 유리판처럼 상(Imago 혹은 Imagia) 들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의 일종이었을 텐데, 이렇게 파손된 상태에서도 상들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것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은 탓에 알 수 없었다.
  "저렇게 유리판이 깨져도 상을 보여줄 수 있었는지 알고 계신가요?"
  그 유리판의 깨진 표면을 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나의 오른쪽 곁에 있던 레미스 그리고 리피에게 유리판이 깨져도 장치들은 상을 보여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리피가 레미스를 대신해서 일반적으로는 유리판이 깨지면 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하고서 박물관에 전시된 물품들을 포함해 고문명 유적에는 이렇게 본래는 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 유리판 혹은 유리 장치들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은 그 표면들이 깨져 있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었다고 말했다.
  입구의 정면 너머에 위치하고 있던 전시대의 한 가운데에 있던 유리판의 양 옆에는 두 종의 유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왼쪽 옆에 있던 것은 그것보다 작은 유리판의 일종이었고, 오른쪽 옆에 있던 것은 두 개의 판을 이어붙인 것처럼 보이는 장치로서 그 중 세워진 부분은 유리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장치의 유리판 역시 표면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고, 남은 부분은 버튼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계기판 같은 장치로 본래는 수많은 버튼들이 나열된 장치였겠지만 그 중 대부분이 유실되어 버튼들이 드문드문 배치된 것처럼 보였을 것임이 누가 봐도 역력해 보였다.
  "이 물품들은 지금은 사용할 수 없겠지요?"
  "우선 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부터 망가져 버렸으니까요."
  이 물음에 레미스가 바로 답했다. 그 이후, 나는 인근의 다른 전시대들을 지나치면서 전시대에 진열된 유물들의 모습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표면이 갈라지고 깨어졌으며, '집적 회로 (Olosfydyin Antrîgil, OA)' 라 칭해지는 작은 장치들을 비롯한 부품들이 숱하게 떨어져 나갔을 기판들, 작은 곽처럼 생긴 부서진 장치들이나 귀마개들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기둥 주변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 유물들을 둘러본 이후에 다른 기둥들 주변에 자리잡은 전시대의 유물들도 하나씩 둘러보려 하였다. 기나긴 글들이 쓰인 책자들과 이미 파랗게 바래버린 빛 그림 (Fotografia 혹은 Vicagry) 들, 역시 다 바래진 빛 그림들이 가득 수록된, 잡지(Magazina) 류의 일종으로 추정되는 책자들, 낡은 소리판들과 녹슬어 버린 원반형 장치들, 이제는 외형이 심하게 변질되어버려 무엇을 묘사했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된 그림들과 온갖 형상들이 지하의 전시실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유물들의 용도를 아는 이들은 아직 많지 않은 것이지요?"
  일행이 다시 가운데 기둥 부근으로 돌아올 즈음, 내가 건네는 물음에 레미스는 조용히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전시된 유물 이외에 여러 유물들을 도서관 측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해당 유물들의 용도에 관한 연구를 도서관의 요정들이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는 생소하기 이를데 없는 물품들도 적지 않고, 책자들을 비롯한 물품들 중에 해석할 수 없는 문자들이 쓰인 것들도 적지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그 용도를 파악하려 하고 있다고.
  이런 유물들이 어디에서 발굴되는지에 대해서는 대략 아는 바가 있었다. 세니티아의 아르나이 (Arnay) 평원이나 라르니온 (Larnion) 의 대초원, 광야에 고문명 기술에 의해 건설된 건물들의 흔적이 남은 유적지들이 널려 있으며,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된다. 대개는 유적 내부에서 발견되거나 땅 밑에서 발굴되는 경우가 많지만 길바닥에 아무렇게 버려진 듯이 놓여진 물건들이 고문명의 유물이었음이 밝혀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간혹 집을 짓다가 혹은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심지어는 물놀이를 하는 도중에 유물들이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모양. - 물놀이를 하다가 유물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당황하기도 했었다.

  "이 마을의 고문명 유적 부근에도 그렇게 발견된 유물들이 몇 있대요. 물놀이를 하다가 유물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저희 마을에도 있긴 있었어요."
  물놀이를 하다가 유물이 발견됐다는 일화는 아와레의 요정들, 고양이 여인들에게도 있었다고 한다. 요정들이 에즈리스 북쪽 인근의 숲 부근에 있는 샘에서 물놀이를 하는 도중에 샘의 한쪽 부근에 다른 풍경과 큰 위화감을 가지는 돌 덩어리 비슷한 것이 이끼와 풀에 감싸인 채 발견되었는데, 물놀이를 마친 요정들이 이끼와 풀을 떼어놓고 보니, 어떤 기계의 동력 장치였다는 것이 밝혀진 일화였다. 이외에 들판을 우연히 거닐다가 옛 시대에 만들어진 액자와 보물 상자가 발견된 사례도 있었으며, 집적 회로를 비롯한 부품들이 붙어 있었던 기판들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 해당 기판은 주요 부품들이 상당수 떨어져 있었기에 실제 가동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레미스는 도서관 지하의 전시실 그리고 보관고에는 이렇게 발굴된 고대 유물들이 전시 및 보관되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도서관에 기증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아 마을과 그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의 수는 도서관에 소장된 것들보다 더 많을 것임을 이어 밝히기도.
- 유물 보관소는 전시실의 너머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광선의 차단을 위해 조명은 최소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하였다.



  "아르나이 (Arnay) 에도 이런 고문명 유물들을 전시하는 곳이 있지 않아?"
  "있지." 이후, 전시실을 떠나 다시 시계 방향으로 계단을 따라 1 층을 향해 올라가는 도중에 아네샤가 나에게 물었다. 이 물음에 나는 바로 있다고 답을 했다. 하지만 아네샤도 들러 봐서 알고 있었겠지만 아와레의 요정들처럼 진지하게 유물들을 전시 및 보관하지는 않으며, 골동품 가게의 물품들처럼 판매하는 곳들이 대다수라 하였다. 애초에 아르나이나 인근에 위치한 아데시아 (Adesia) 의 정령들은 물품의 용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많고-도서 류는 그래도 대충 짐작해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도서 류를 제외한 유물들은 장식용으로 구매되는 경우가 많다고 가게 주인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유물이 뭐였더라?"
  "그 원반들 있잖아, 은빛, 금빛,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원반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무지개색 무늬를 띠기도 해서 장식용으로 상당히 인기가 많다고 들었어."
  이후, 아네샤가 이어 건네는 물음에 내가 답했다. 아네샤도 그 원반들을 보기는 보았었지만 그렇게 인기가 많은 물품인 줄은 몰랐던 모양. 아네샤는 원래는 어떤 집 내부의 천장에 장식용으로 매달린 그 원반들을 보고 나서, 그 이후에 그 집에서 처음 본 원반들이 본래는 빛을 이용한 기록 매체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많이 놀랐었다고 했다. 아데시아나 엘젠에도 고문명의 유물들을 골동품처럼 취급하고 판매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원반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대에서는 그런 물품들이 거의 발굴되지 않아서 그랬었다고 했다.
- 처음에는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활용했지만 이후에는 글이나 그림 등을 전자 신호로 변환해 기록했었다고. 빛을 비롯한 수많은 취약 요인이 있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기록의 흔적이 사실상 사라져 버린 것들이 대다수라고.

  고문명의 유물 관람 이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던지라 유물 관람을 마치고 나서는 바로 도서관 밖으로 나갔고, 그와 함께 나와 아네샤는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 레미스 그리고 그를 따라 나아가던 리피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광장으로 나아가려 하던 그 때, 나의 눈앞에 보이던 서부 광장의 중앙에 자리잡은 탑 부근에서 야누아와 미라 그리고 리에타가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하는 모습이 광장에 머무르면서 뛰어 놀고 있던 혹은 광장 일대를 지나쳐 가던 요정들 및 고양이 소녀들 사이에 보이고 있었다.
  탑의 왼편에 야누아가 서 있었으며, 오른편에 리에타가 그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미라가 그들 사이에 서 있으면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형태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너도 같이 가겠다는 말이지?"
  "물론이다옹~ 마냐하타의 족장이 나에게 충분한 금전을 준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옹~."
  야누아가 팔짱을 끼며 서 있으면서 건네는 물음에 리에타는 금전만 제공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금전을 주는 만큼, 먀미아 사람들을 위한 무기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이에 야누아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런 리에타에게 물었다.
  "그렇게 금전을 받으면 어디에 쓰려고?"
  그러면서 딱히 쓸 데 없지 않냐고 묻자, 리에타는 "쓸 데라면 얼마든지 있다옹~" 이라고 답하고서 금전을 갖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재료들을 구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그리고 조용히 왼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금전을 왕창 들고 다니면 으~엄청 귀한 재료들을 구해갈 수도 있다옹~ 그런 재료들을 구해서 남들은 못 만드는 무기 같은 것을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냐~옹?"
  "네 재능이 허락한다면 해도 되겠지." 그러자 곁에서 지켜보던 미라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야누아는 그런 리에타가 못 미더운 듯해 보였지만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짓기만 할 뿐, 그의 생각에 달리 비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희귀한 재료를 가지고 대단한 무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소망에 대해,
  "그러다가 잘못 만들어서 돈만 날리고 창피만 당하는 것도 본인 책임이겠지."
  라고 말하기는 했다. 그리고서 야누아는 클라리스에 대해 아직도 라니아와 같이 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리에타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고서 점심식사 시간 전에 같이 바느질하며 식탁보 만들고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야누아가 그런 리에타에게 물었다.
  "그렇게 해서 좋은 식탁보들을 라니아 씨께 받기도 했었잖아."
  "...... 그러하기는 했다옹." 단순한 소일 거리 정도가 아니라 라니아가 실제로 만든 직물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졌고, 또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음을 알리는 대화였다. 다만, 이 대화는 리에타가 식탁보를 너무 험하게 다루어서 멀쩡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미라의 핀잔섞인 이야기로 끝나고 있었다.
  "이제 곧 점심 식사 시간이지? 라니아 씨네 집으로 갈까?"
  "그래야지, 오랜만에 린나의 모습도 다시 봐야지~." 이후, 미라가 야누아에게 라니아의 집으로 가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야누아는 당연한 사항이라고 답하고서 오랜만에 린나의 모습도 보고 싶다는 소망을 그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그 때, 광장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라 그리고 리에타 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 클라리스 그리고 라니아가 린나 그리고 모니카를 대동하면서 미라 등과 함께 오고 있었다. 린나 그리고 모니카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들과 나란히 광장을 걷고 있었다. 이에 나는 아네샤와 함께 슬쩍 그들의 틈에 끼어들어 그들과 함께 리에타 등을 향해 접근해 가고 있었다.
  "점심 식사 시간인데, 집으로 가지 않는 거예요?" 그 때, 야누아가 팔짱을 풀고 라니아를 향해 다가가면서 그에게 물었고, 그 물음에 라니아는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간만에 밖에서 식사를 제대로 해 보고 싶어서 나와 봤다고 말한 다음에 그 동안 늘 집 근처만 오가고 있어서 이런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나가게 된 것이라고. 그리고 야누아, 미라, 리에타에게 같이 식사라도 하겠냐고 묻자, 미라가 놀라면서 돈은 충분히 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라니아가 치마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는데, 꽤 많은 돈이 나왔는데, 라니아에 의하면 5000 G (게) 정도의 돈이 있었다고 했다.
  "집에 있는 것들, 다 들고 나온 것 아니지요?"
  "밖에서 식사하느라고 다 들고 나오겠니? 그간 일하면서 얻은 돈이 있는데, 그 중 일부를 가져왔지."
  이 물음에 라니아는 걱정할 것 없다고 답하고서 리에타 그리고 미라에게 그 동안 밖에서 함께 식사하거나 한 적 없지 않았느냐고 묻고서 같이 가자고 청했다. 그 때, 아네샤가 라니아에게 어느 식당으로 가려 하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 물음에 광장의 북쪽 너머에 있는 구역에 있는 곳으로 비교적 작은 곳이지만 개인적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이기도 하고, 또 음식 재주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참 만족스러워하는 곳 중 하나라고 그 식당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너희들, 곧 먀미아로 나쁜 것들과 싸우러 갈 것 아니니? 그러니까 큰 마음 먹고 사 주는 거야."
  그리고 나와 아네샤에게도 먀미아로 같이 가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묻고서 좋은 것들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말하고서 좋은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겠다고 나에게 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일행의 발걸음은 이전에 지나쳤던 그네 그리고 찻집 인근의 길을 지나 그 너머의 집들이 모인 거리에 이르러 거리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분수대 남쪽 인근에 자리잡은 어떤 건물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현관문 바로 앞에 붙어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간판에는 식당임을 알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그 간판이 라니아가 이른 건물의 현관문이 그 건물이 식당으로 쓰이고 있음을 제대로 알리고 있었다. 라니아가 말한 대로, 그 건물은 작은 건물이기는 했지만 창문 너머를 통해서도 식당으로서 갖출 수 있는 것들은 다 갖추고 있었으며, 내부도 깔끔해서 그 건물 내부에 있는 곳이 나름 괜찮은 식당임을 그 모습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건물들 사이에 자리잡은 식당에는 탁자가 3 개 정도만 있었으며, 각 탁자에는 4 개씩의 의자만 있어서 일행이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려면 탁자 2 개를 붙이고, 탁자의 모든 의자들을 가져와야 할 형편이었다. 그 정도로 작은 식당이기는 했지만 은근 갖출 것은 다 갖춰져 있었으며, 내부도 상당히 깔끔해 보였으며, 도구들도 상당히 세련되어 보였다. 가게의 주인은 주황색을 띠는 짧은 머리카락과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 족으로 머리싸개 사이로 고양이 귀들을 노출시키고 있는 이로서 회색 상의와 푸른 바지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이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게 되네요."
  "안녕하세요~." 식당 주인이 일행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에 라니아가 그런 그에게 반가움의 감정을 표하는 목소리로 답례를 하였다. 이후, 라니아는 이 날은 수많은 손님들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게 될 테니, 식탁을 모아 놓겠음을 말하니, 식당 주인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답했고, 그리하여 라니아가 2 개의 식탁과 의자들을 모아 일행이 한데 모여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라니아는 일행이 모여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요리 주문을 하니, 채소 피자(Legompizo, Lamëlpitsa) 와 바나나 딸기 빵 (Banano-Frago-Panoj, Bananathalipangdr), 두부 구이 (Bakita Tofuoj, Khufdyin Tofudr), 계란 프라이 (Fritita Ovoj, Yalzisidr)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 (Brasiksalato, =ayaïfsalata) 를 주문했다. 종류는 적었지만 많은 이들이 와 있었기에 많이 주문했다고, 당시에 탁자 주변의 의자들에 사람들이 어떻게 앉았는지를 말해 보자면 왼편에는 입구에서 입구에서 먼 쪽에서부터 역 시계 순으로 라니아, 클라리스, 미라, 리에타 그리고 린나의 순으로 앉았고, 오른편에는 입구에서 먼 쪽에서 시계 순으로 야누아, 나, 아네샤 그리고 모니카의 순으로 앉았다. 그 이후, 일을 마치고 왔다는 루미가 아네샤와 모니카의 사이에 앉으면서 10 명이 한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는 그 동안 거의 없었지요?"
  "없었지, 그 동안에는. 이전에는 야누아도 오지 않았으니까." 이에 라니아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이후에 식당 주인도 이번에 한 번에 사람들이 많이 온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라 여기고 있는 듯해 보였다고 식당 주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 이후, 루미가 라니아의 모습을 보더니, 식당에 있는 요리들은 이전에 라니아가 했던 요리들 아니냐고 물었고, 그 이후에 식당 주인이 라니아로부터 기술 전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기술 전수는 한 적이 없어." 하지만 라니아는 루미에게 식당 주인이 그로부터 기술 전수를 받거나 한 적은 없었다고 답하고서 다만, 식당 주인인 고양이 여인이 아직 식당을 차리기 전에 자신이 만든 것들을 보여주면서 한 번 만들어 보라고 권유를 해 보았는데, 그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내가 만든 것보다도 훨씬 더 잘 만들어서 감탄을 할 정도였어. 그러면서 식당 차려도 되겠다고 했더니, 정말로 식당을 차릴 줄이야."
  이후, 그는 식당 주인에게 식당을 차려도 되겠다고 농담삼아 말했었는데, 정말로 식당을 차릴 줄은 몰랐다며 웃으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하나씩 식사를 위한 요리가 도착하기 시작하니, 우선 채소 피자가 식당 주인으로부터 직접 전달되었다. 종업원이 따로 있는 식당이 아니다 보니, 주인이 직접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양배추와 양파 볶음, 당근 볶음이 포함된 치즈 피자 한 판-10 조각으로 나누어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큰 판이었다-을 1 조각씩 나눠 먹기 시작할 무렵, 루미가 야누아에게 물었다.
  "야누아, 동생들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어?"
  "동생들은 지금 먀미아에 있어, 아마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 물음에 야누아가 바로 답했다. 이전까지는 마냐하타의 해안에 있었는데, 아마도 자신이 아와레에 온 시점에서는 아테다르마 강가의 마을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 말하고서 먀미아로 돌아간 다음에는 곧바로 아테다르마 강가에 있는 마을로 갈 것이라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아테다르마 강가의 마을들에는 묘족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묘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이후, 루미가 다시 야누아에게 물었을 때, 야누아의 표정이 급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왜 그래? 그 쪽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진 거야?"
  표정이 급히 어두워지면서 어떤 말도 잇지 않고 있는 야누아를 보며, 루미가 의아함을 느끼며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야누아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라니아가 그런 야누아를 대신해 아테다르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루미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하였다.
  "지금으로부터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닐 거야, 아테다르마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먀미아의 묘족들은 아테다르마 대계곡 일대에 거주하고 있지. 강가에 걸쳐 부족 단위로 묘족들의 마을이 여럿 자리잡고 있어. 처음에는 작은 마을 몇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가 묘족의 수가 늘어나면서 마을의 규모도 커지고 마을의 수도 늘어나, 한창 때에는 아테다르마에 3 천 여의 묘인들이 살고 있을 정도에 이르렀어. 역시 너희들도 알겠지만, 먀미아에는 사실 아테다르마 이외에 살기 좋은 곳들이 많아, 야누아가 몇 번이고 들렀던 대륙 동부의 바다가 보이는  마냐하타 (Mañahatta, Manyahatta) 는 물론이고, 포화탄 (Pohuatana, Pohwatan) 이라든가, 아니면 따스한 라스 플로리다스 (Las Floridas) 같은 곳들이 있잖아. 그럼에도 묘족들은 때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아테다르마를 떠나지 않았어.

  "그들이 실은 그들은 먼 옛날에 있었던 아테다르마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으로서 언젠가 선조들의 원수를 갚을 날을 고대하며 아테다르마에 머무르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자 루미가 아테다르마의 묘족에 관해 자신이 들은 바 있음을 밝히며 그것에 대해 알려 주려 하였고, 이에 라니아는 그 말대로라고 화답하고서 그래서 아테다르마의 묘족들은 언젠가 기계 군단과 맞설 날이 있으리라 여기면서 훈련을 거듭하고, 무기들을 들여오며 그 때를 대비하려 했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먀미아 성계에 기계 군단이 들어왔어. 무슨 목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아테다르마 협곡 인근의 산악 지대를 근거지 삼았지. 묘족들은 때가 왔다고 여기고, 선조들의 원수를 갚기 위한 원정대를 기계 군단의 근거지로 보냈어. 이미 그들은 다수의 인원을 수송할 수 있는 함선들까지 제작하고 있었고, 그래서 부족들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기계 군단의 근거지로 지속적으로 원정대를 파견시킬 수 있었지. 제 1 대 원정대가 기계 군단이 자리잡은 검은 구름 속으로 진격해 들어간 이후로 틈나는 대로 묘족들은 원정대를 구성했고, 원정대를 구성할 때마다 수많은 묘족 전사들이 원정대의 일원으로서 아테다르마의 산악 지대에 있는 기계 군단의 검은 구름 속으로 들어갔지만 그 검은 구름 속에서 나간 이들은 지금까지도 한 명도 없었지.
  그러다가 이번에 부족 대연합이라 하여 아테다르마 계곡에 흩어져 있던 부족의 일원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어, 전사들 뿐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이 모두 아테다르마 대계곡에 자리잡은 '태초의 마을 (Pajmayino Mura)' 이라 칭해지는 마을의 한 광장에 모일 수 있게 된 거야. 제 1 대 원정대 출신으로서 지금껏 시행된 원정에서 늘 기적같이 생환해 왔던 묘족 전사가 부족들을 돌며 행하였던 연설이 크나큰 효과를 거두면서 묘족들의 대 모임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이지.

  "그 묘족 전사의 이름이......"
  "헤렌티노 하므자 (Herẽtino Hamuza)." 이후, 루미가 그 전사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묻자, 야누아가 바로 답했다, '하므자' 가 그 전사의 이름이었던 것은 이전에 그 전사를 본 적이 있었고, 그의 동료들, 부하들로부터 그 이름을 들었기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그 사람을 만나게 된 거야?"
  "어렸을 때, 그의 용병단, '해방군 (Asvobozyno Iksa)' 을 자칭했던 그 용병 집단에 잠시 가담한 때가 있었거든."
  그 물음에 야누아가 바로 답하니, 루미가 그제서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차린 듯이 '아아.....' 라고 목소리를 내더니, 기계 군단과의 싸움에 나선 '해방군' 을 자처한 용병단을 도와주려 했던 야누아에게 그하고 마르차를 죽일 뻔했다는 그 용병 대장이 그 하므자가 맞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야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렇다는 대답을 대신하고서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먀미아의 고양이 나라와 아테다르마에서 몰살당한 선조 묘인들의 원한을 갚겠다며 무모한 싸움을 이어가려 하던 용병단의 의기에 반해서 마르차와 함께 그들의 힘이 되어주기로 했었지. 그러면서 적게나마 도움이 되려고 애를 썼는데, 그 도움에 그 따위로 답례를 하다니......."
  그리고서 야누아는 눈 앞에 놓인 물 잔을 들고 마치 센 술을 들이키듯 한 번에 들이키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실상을 목도하고서 나하고 마르차 모두 그가 기계 군단에게 개죽음이라도 당하기를 기원했었는데, 그 작자가 그 이후에도 어떻게 기계들 틈새에서 기어 나왔는지 몰라도 혼자 살아남아서는 아테다르마 계곡의 부족에 있던 묘족 사람들을 죄다 선동해서 총, 칼, 도끼를 들고 전쟁터에 나서도록 하고 있었지."
  "그렇다면, 그 광경을 보고 있었어?"
  "봤지, 어쩌다가." 하므자라는 인물이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는 광경을 본 듯한 야누아의 이야기에 루미가 놀라면서 그 광경을 실제로 보았느냐고 묻자, 야누아가 루미의 그 물음에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실로 우연히 목도하게 됐음을 밝히고서 그 때에 자신과 더불어 마르차를 비롯한 동생들도 같이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본래는 묘족 마을에서 묘족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다가 묘족 어른들이 광장으로 모이는 광경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밖으로 나가 봤더니, 하므자가 묘인들을 선동하는 광경이 보였다고.
  "그래서, 그 광경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어?"
  "역겨웠지. 진작에 죽었어야 할 이가 광장의 대 위에 올라서서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도저히 보고 싶지 않았어."
  더 나아가, 마르차는 폭언을 퍼붓기 직전이었고, 아예 욕을 하려고 작정한 이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루미가 대체 누구냐고 경악하면서 묻자, 야누아는 아직 거기까지는 말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라니아, 클라리스 등은 짐작하고 있는 이가 있는 듯해 보였으나, 그들 역시 누구라도 솔직히 말하지는 않고 있었으니, 그 광경을 보면서 욕을 하는 것과 어울리는 인상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이라 바로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아무튼,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므자라는 인물이 그 만큼, 야누아를 비롯한 이들에게 역겨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한 동안 하므자라는 인물에 대한 험담이 오가고 난 이후, 라니아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므자가 얼마나 많은 묘인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전해지지 않아.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무렵에 정말로 많은 묘인들이 하므자의 선동에 의해 아테다르마의 산악 지대에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자리잡고 있던 기계 군단의 기지 정벌군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지."

  기계 군단의 정벌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수많은 부족들의 성묘들이 군인이 되어 총포와 창 그리고 검을 지급 받았고, 속속이 우주 함선들이 아테다르마 협곡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아테다르마의 부족민들이 당당한 고양이 전사로 거듭나고 있었지만 전사들이 지급 받는 무구들이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는지에 대해 아는 이들은 심지어 최측근들 중에서도 많지 않았다, 묘족은 물론 엘베, 드벨파 족의 기술력으로도 제조되기 어려워 보였을 함선들의 도입에 관한 비밀은 오직 하므자만 알고 있었다.
  어떻게 헤렌티 (Herẽti) 가 무구와 병기, 함선들을 조달해 오는지를 알 수 없었지만 야누아 자매가 그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며 아테다르마의 부족촌을 떠나갈 즈음, 아테다르마의 묘인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전사가 되었고, 부족마다 선조들의 목숨을 앗아간 기계 병기들에 대한 복수를 결의하고 있었다. 혹자들은 이렇게 한 지도자의 뜻을 어떠한 의심도 저주도 없이 맹목적으로 따르려 하는 묘인들의 모습이 과거 바스타체 (Bastace) 여왕에 의해 선동되어 어리석은 길을 걸었다가 노묘와 어린 고양이들을 제외한 종족 전체가 몰살의 운명을 맞이한 소위 '위대한 묘류 제국' 시절을 연상케한다고 말했지만 일부 뜻 있는 인사들의 발언은 세상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헤렌티노 하므자라는 지도자 아래에 부족 단위로 흩어졌던 묘족은 다시 단결하였고, 2 천 여의 묘족 장병들이 '정의의 군대' 구성원이 되었으니, 그 수는 아테다르마 부족의 묘인들 중에서 4/5 이상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내가 본 적이 있어." 4/5 라는 숫자가 거론되자마자 야누아가 자료를 보았다며 그 수가 얼마나 되었는지에 대해 말하니, 아테다르마에 있던 부족들 전체의 묘인 수는 2900 즈음에 이르렀는데, 소위 말하는 '정의의 군대' 에 소속된 이들의 수는 2400 명에 이르니, 전체 인구의 82% 가량이 군대에 가담한 셈이었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패할 경우에는 일대의 묘족 집단은 거의 전멸 상태가 되는 것이잖아!"
  "그러니까......" 이에 루미가 경악의 감정을 어찌하지 못한 채, 야누아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걸자, 야누아가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고 화답을 했다.
  "사실상 종족의 명운이 하므자라는 자가 자행하는 불확실한 도박에 걸린 셈이 되고 말았지. 하지만 하므자가 심은 승리에 대한 확신에 취한 사람들과 승리 이후에 펼쳐질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사로잡힌 이들에 의해 원정이 강행되었을 거야."

  이들과 더불어 30 여 척의 함선들과 수많은 병기들을 거느리게 된 하므자는 어느 날, 본격적인 기계 군단의 정벌을 개시하였다. 출정식에서 하므자는 반드시 기계 군단과의 결전에서 자신이 진두에서 지휘하며 '묘류' 의 승리를 이끌겠다는 결의 그리고 승리 이후에는 먀미아의 대륙 전역을 '묘류의 제국' 으로 선포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연설 이후에 묘족 장병들이 탑승한 수송선, 함선들이 기계 군단의 기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므자 역시 군단의 기함에 탑승하였으며, 기함은 앞장서서 기계 군단의 근거지가 위치한 검은 구름 속으로 들어갔고, 이후, 기함을 따라 여러 함선들이 차례로 검은 구름을 향해 뛰어들었다.
  남은 이들은 원정군이 떠난 이후, 하므자를 비롯한 장병들이 기계 군단을 멸하고, 기계 군단이 산의 한 구석에 풀어놓은 구름을 걷어내면서 마을로 당당히 귀환할 것임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여러 나날이 지나도 기계 군단이 풀어놓은 구름은 사라지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아무도 그 곳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하므자를 비롯해 그의 선동에 넘어가 그의 병사가 된 모두 그 이후에 사라져 버렸지. 이전에 기계 군단에 복수하겠다고 나섰던 묘족 전사들 그리고 하므자가 거느렸던 자칭 '해방군' 의 일원이었던 용병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후로 아테다르마의 묘족 사회는 초기 시절로 돌아가 버린 상태야. 아니, 초기 시절만도 못하게 되어 버렸지, 초기에는 언젠가는 기계 군단에 대한 복수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갖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 가능성마저 없음이 증명되었으니까."
  루미의 물음에 라니아를 대신해 야누아가 답을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아테다르마의 묘족 사회를 다시 방문한 적이 있음을 밝히고서 이제는 고양이 소녀들에 대한 반감은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만연한 체념과 절망에 우울함을 느끼며 마을을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더 이상은 고양이 소녀들이 인간을 닮았다고 뭐라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거네?"
  "그렇다기보다는 못하는 것이겠지요, 종족 자체에 희망이 없다며 체념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어요. 이런 상황에 인간을 닮고 안 닮고가 중요하겠어요?"
  이후, 야누아가 밝힌 바에 의하면 수많은 묘인들이 아테다르마를 떠났다고 한다, 선조들의 원수를 갚기는 커녕, 기계 군단을 이기지도 못하는 묘족 사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기고, 아테다르마에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하며 묘인들이 떠나가기 시작한 듯하며, 남은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조상들이 살던 곳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 하였다.
  "아테다르마의 기계 군단을 향해 간다고 말은 했었니?"
  이후, 클라리스가 야누아에게 기계 군단에게 간다고 말했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미라가 하므자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답을 할 따름이었다, 이에 클라리스가 야누아에게 정말로 모르는 것이냐 아니면 의도적으로 모른척 하고 있을 뿐이냐고 묻자, 야누아는 알아서 상상하라고 답을 했다.

  "그래서, 묘인들이 잘 지내냐고 물었는데, 왜 그러나 했더니......."
  그렇게 긴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루미가 야누아에게 말하니, 야누아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지." 라고 화답했다. 이후에는 잠시 동안 다른 말 없이 식탁에 앉은 이들 모두 식사에 전념하고 있었다. 나 역시 계속 먹고 있었는데, 두부 구이와 빵 그리고 계란 프라이가 그것들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양배추가 많이 들어있던 야채 피자는 치즈 맛도 있고, 과일로 만들어진 소스 덕에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고, 채소를 나보다 더 잘 먹었던 아네샤는 제법 맛있게 잘 먹고 있었다.
  다른 이들 역시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그런대로 잘 먹고 있는 듯해 보였다만, 야누아는 야채 피자를 꾸역꾸역 먹고 있는 듯해 보였으며, 린나, 모니카도 야채 피자는 잘 먹지 못했고, 그래서 라니아가 그들이 먹을 것으로 빵을 몇 개 더 주문해 주기도 했다. 이에 라니아는 딱히 안 좋은 일로 여기지는 않은 것이 자신들의 근본은 고양이들이라, 채식이 처음부터 익숙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말했었다. 다만, 라니아는 야채 피자를 잘 먹고 있는 듯해 보였는데, 이에 대해 라니아는 오랫동안 채식을 해 온 덕으로 고양이 여인들을 비롯한 묘족에게는 흔한 일은 아니라 말하기도 했다.
  "바람의 정령들은 고기를 잘 먹는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이후, 루미는 바람의 정령들은 나와 아네샤에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자신도 평소에는 야채나 감자, 고구마 등을 자주 먹는다고 말하고서, 개울에 연어가 올라오면 그것을 잡거나 아니면 사냥을 해서 짐승을 잡을 때가 있는데, 그 때에 한 번씩 고기를 제대로 먹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아네샤가 시장을 가거나 행상인에게 얻어오는 경우도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먹는 양은 얼마나 되나요?" 그리고 루미가 묻자, 내가 평소에는 한 끼에 감자 두 개 정도에 상당한 양을 먹는다고 답했고, 이에 루미가 자신보다는 많이 먹는 것 같다고 화답하고서 이어 야누아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 많이 먹을 때에는 정말 많이 먹는데, 그러할 때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이후, 라니아는 린나, 모니카와 함께 집으로 가고, 나는 아네샤와 함께 다시 해안으로 나아갔다. 이후, 내가 항구의 가장자리에 서 있고, 그 오른편 옆에 아네샤가 앉아 있으면서 바다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그 때, 이러한 일행의 왼편에서부터 미라 그리고 리에타가 다가왔고, 우선 리에타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야누아와 같이 식사했다는 이야기 들었다옹~ 좋은 이야기 들었냐옹?"
  "좋은 이야기일지는 모르겠는데...... 아테다르마의 묘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에 리에타는 "그랬었냐옹~?" 이라고 말하고서 야누아라면 아테다르마의 묘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이상은 할 줄 알았다고 말하고서 야누아에 대해 자기 동생들 챙겨주기도 쉽지 않을 텐데, 오지랖도 가지가지 한다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에서 놀림 반, 납득 못함 반의 심정으로 말하는 듯해 보였다. 그러자 미라가 해안가에 앉으려 하는 리에타의 왼편에 서서 그를 보며 이렇게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들도 동족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들이 계속 희망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고, 또 그 원흉인 존재에 대한 원망도 깊을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미라는 나와 아네샤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이어서 나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키아라 그리고 라니아 아주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어요, 인류 그리고 인간의 행방을 찾으러 다니신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라르나 씨, 그리고 아네샤 씨께서 이렇게 인간의 행방을 찾는 여행을 하시면서 무엇을 위해 인간의 행방을 찾으려 하시는지, 어떻게 인간의 행방을 찾겠다고 마음을 먹으셨는지 그것에 대해 물으려 해요."
  그간 인간의 행방을 찾으려 한다고 루시언 노인 그리고 라니아를 비롯한 아와레의 고양이 소녀들, 요정들에게 밝힌 바 있지만 어떻게 내가 그리고 아네샤가 인간의 행방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를 아와레의 현지인들이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았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그것에 대해 말해보거나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미라가 나를 비롯한 일행이 하는 여행의 주 목적에 관한 이야기를 요청한 것이었다.
  "어떻게 인간의 행방을 찾아가게 되었냐면...... 고향 마을에 사는 애가 있어요. 그 애가 문득 인간의 행방을 알고 싶다고 저에게 말했고, 그래서 그 애의 소망대로 세니티아 성계권 일대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된 인간, 옛 세니티아 인들의 행방을 찾아 나서게 된 거예요."
  이러한 미라의 질문에 답으로써 나는 마을에 사는 애-루아린 (Luarin)-의 요청, 인간의 행방에 관한 요청에 의해 인간을 찾아나서기 위한 여행에 나서게 됐음을 밝혔다. 막연한 여정이 될 것임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예상했고, 그래서 여러 행성계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마녀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매우 어려운 여정이 이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친한 사람의 요청인 만큼, 가능한 그의 요청에 좋은 해답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한 가지 갖게 된 소망이 하나 있기도 해요."
  이어서 아네샤가 미라에게 말했다. 그간 나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소망, 그것을 이제 나도 듣게 되는 것이었다.
  "어려운 여행이 될 것이라 예상을 하면서도 예상보다도 더욱 막연한 여행이 될 것 같아요. 그 후손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또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그런 이들을 만나기 위해 너무도 막연한 여정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까, 정말로 그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똑똑히 목도하고 싶게 됐어요. 더 나아가 이렇게 묻고 싶게 되었어요, 그렇게 잘 나가고, 모성을 넘어 여러 행성들에서 번창하던 종족이 어쩌다가 그렇게 몰락해 버렸느냐고."
  그것이 그 당시에 내가 들었던 아네샤가 여행을 하면서 갖게 된 소망이었다. 아무래도 여행의 여정이 험난할 것임을 예견하고 여행을 이어가며 악에 받칠 것을 생각하며 가지게 된 소망이었던 것 같다-아무래도 벌써부터 악에 받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아마도 아네샤가 정말로 이 상태에서 인류의 후예를 목도하게 된다면 인류의 후예를 보면서 악감정이 받쳐 올라갈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이러한 그의 소망에 미라와 리에타 모두 그저 환하게 웃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인간이...... 아니, 인류란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린지도 오래라옹.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냐옹? 그 이야기를 혹시 누구에게 내가 해 주면, 내가 아는 애들의 열 중 여덟 이상은 찾을 수 없으리라고 말할 거라옹, 그리고 그 애들 중 대부분은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잘 모를 것이고, 아마도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잘 모르는 애들도 있을 거라옹."
  이후, 리에타가 세니티아에 거주하던 인류를 찾을 수 있을 것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 말한 다음에 인간의 행방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갈 생각이냐고 이어 물었다. 그러자 내가 답했다, 은하계의 중심으로 가면 인류의 행방에 대해 무언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이어 은하계의 중심은 예전부터 천상의 존재들과 관련이 있는 곳으로 여기어졌으며, 천상의 존재들이라면 먼 옛날의 존재가 되어버린 인류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에 의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은하계의 중심에서 인류에 관한 것들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냐옹~?"
  "포기해야지요, 인류를 찾는 일에 저도 무작정 시간을 보낼 처지는 못 돼요."
  이어서 리에타가 건네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자 리에타는 잘 생각했다고 말하고서 안 되는 일에 너무 매달리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라 말하기도 했다. 이후, 미라가 어떤 여정을 거치든 원하는 바를 이루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서 벌써부터 안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말아달라고 나와 (특히) 아네샤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이후, 그는 잠시 동안 말 없이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가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던 미라를 향해 잠시 고개를 돌리고 있더니, 그 이후에 다시 한 번 나와 아네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다른 주제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여기 살기 좋은 곳 같지 않냐옹? 다소 심심하기는 하지만 하늘과 바다가 참 좋은 곳이라옹~ 당신들 생각은 어떠냐옹~?"
  리에타는 나와 아네샤를 보면서 하늘의 모습이 어떠냐고 묻고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삶을 사는 이들이라면 하늘의 풍경에 대해 나름 냉정하게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긴 듯해 보였다. 하지만 나와 아네샤라고 딱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는 되지 못했고, 그래서 눈 앞의 하늘 풍경에 대해서는 그저 너무 맑고,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라 답을 해 주고 있을 따름이었고, 아네샤도 달리 말을 건네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 이후, 아네샤가 리에타 그리고 미라를 보더니,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리에타 씨께서는 미라 씨와 함께 얼마나 자주 이 곳에 오시나요?"
  "매일마다 몇 번씩은 온다옹~ 일하다가, 지루해지다가 하면 기분 전환하기 위해서라옹~ 미라도, 클라리스도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일을 하는데, 미라는 피곤하면 주로 나와 마찬가지로 이리로 온다옹~ 클라리스는 다른 데 가는 것으로 안다옹~."
  그리고 가끔 클라리스가 오기도 하지만 대개 미라나 자신을 따라 가는 편이라 말하고서 클라리스는 바다가 그렇게 취향인 것은 아닌 듯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아네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미라를 보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클라리스 씨는 어떻게 미라 씨를 만나게 됐나요?"
  "......." 하지만 미라는 쉽게 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리에타가 잠시 미라를 보더니, 나와 아네샤에게 그는 뭔가 사연이 있어서 그것에 대해서는 늘 말을 아끼는 편이라 말했다. 이후, 미라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갑자기 자리를 떠나 자신의 집 쪽으로 나아가자 그 광경을 보며 리에타가 말했다.
  "아무래도 클라리스를 만나러 간 것 갔다옹......" 그러다가 미라가 눈 앞에서 사라지자마자 다시 바다로 시선을 향하더니, 잠시 동안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으려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리에타의 분위기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꼈고, 아네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리에타는 가만히 앉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이기만 한 채로 멍한 듯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른편 옆에 있던 나와 아네샤의 모습을 보더니, 이전과는 약간 달라진 어조로 말을 건네었다.
  "...... 미라는 클라리스를 만나러 나간 것이 아니에요, 제가 여기서 뭐라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데, 자기 때문에 못 할까봐 자리를 피해준 것일 뿐이지요."
  이에 아네샤가 놀라면서 "야옹~" 하는 말은 평소의 말 습관이 아니었냐고 묻자, 리에타는 평소의 말 버릇이기는 하지만 그 때에는 그런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라고 화답했다. 이후, 리에타는 이전보다 더욱 차분해지고 어른스러워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미라, 야누아에 대해 이것저것 들은 이야기가 많아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여기서 여러분들께 다 털어 드릴게요."
  리에타는 클라리스, 미라, 야누아, 마르차 등과 친분을 가지면서 남들에게는 차마 해 주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 왔음을 밝히고서 이번 기회에 미라와 야누아 그리고 라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겠음을 이어서 밝히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미라는 어떻게 클라리스와 만나게 됐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미라요?" 이에 리에타는 잠시 깊이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클라리스도 미라가 어떻게 마을에 도래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요. 유물들을 주워가려고 저와 함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길바닥에 쓰러진 애가 있어서 라니아 아주머니께 데려갔고, 그 이후로 이렇게 저하고 클라리스와 인연을 갖게 된 거예요. 그 애가 원래 어떤 애였는지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파악하기 힘들었어요, 날개가 달려 있어서 클라리스, 루미, 레미스 등과 같은 요정일 것으로 추측이 가능할 따름이었지요.  그러다가 라니아 아주머니께서 그 애의 모습을 잠깐 보더니, 그 애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어요."
  "원래 어떤 존재였기에 그래요?" 그러자 리에타가 바로 나와 아네샤에게 이렇게 물음을 건네었다 :
  "라르나 씨, 아네샤 씨, 혹시 윌리 (Willy) 혹은 빌리 (Villie) 라는 요정에 대해 아세요?"
  "윌리라고요!?" 그러자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윌리라는 존재를 여태껏 한 번도 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자주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주로 베라티사, 아르데이스 등지에서 발견되는 이들로 세니티아에도 몇 남아있다고-이들이 있을 만한 곳이라면 다르시스 (Darsis) 숲 일대일 것이다- 알려져 있지만 그 모습을 직접 보거나 하지는 못했다. 이들의 유래에 대해서는 약간씩 다른 전승들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전승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 '이들은 원래 실연을 당하고 슬픔을 겪으며 죽은 젊은 여성들로서, 그 혼령들이 변질된 존재' 라는 것이었다.
  이 혼령들이 어떻게 윌리라는 요정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려져 있다 : 윌리들에게는 그들의 수장인 여왕이 있으며, 실연을 당하거나 속임을 당해 죽은 젊은 여성(들)이 생기면 여왕이 직접 그를(그들을) 불러 요정으로 환생하도록 하는 것으로 여왕이 여성의 혼령에게 환생을 요구했을 때,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윌리가 되는 것이었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둠의 망령이 되어 의식과 혼의 형상이 점차 무너져 가면서 결국 소멸해 간다고 한다.
- 이런 이야기를 루샤트 (Lusyat) 에 찾아온 쌍둥이 자매 음유 시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여왕이 저주를 내려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여기며, 여왕에 대한 험담-그리고 욕설-들을 늘어 놓았었다.

  이런 이야기만 들으면 내가 윌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놀라고, 루샤트에서 아이들이 여왕에 대한 험담과 욕설을 늘어놓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혼령들은 윌리로 환생하게 되면 전생의 모든 기억을 잃고-사실, 혼령들은 정령이나 요정으로 환생하게 되면 혼령의 특성 자체가 변질되어 전생의 거의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그저 남성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사념만 남은 채로 그들의 근거지로 남성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들을 유혹해서 계속 춤을 추다가 물이나 함정에 빠지거나 절벽에 떨어지는 등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리가 되어버린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말만 요정이지, 사실상 사령들의 무리가 되어 버리는 것.
  이러하니, 산악 지방에서 음유 시인으로부터 어두운 숲 속의 사령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령들의 본 바탕이 어쨌든 혼령을 원한에 충실한 원령으로 변질시키는 여왕의 행보에 대해 개탄을 하고, 상스러운 폭언들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리에타는 나와 아네샤에게 미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본래 클라리스 등과 다른 존재라 말하면서 그에 이어 '윌리' 라는 존재를 언급했었고, 이는 미라는 원래 '윌리' 라는 요정이었음을 의미했다. 이들이 본래는 (여왕이라는 '작자' 의 저주로 인해) 원한과 증오가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된 존재였다고 생각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 그 애는 마을 북쪽 근교의 숲에서 클라리스에 의해 발견됐대요. 클라리스가 처음 봤을 때에 그는 자신과 같은 두 쌍의 날개를 달고 있었지만 낡아서 잿빛으로 변한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그래서 처음에 그를 발견했을 때에는 북쪽 근교에 기계 병기라든지, 괴물 같은 것들이 습격해 오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을 전체가 공포에 떨기도 했었어요."
  그의 이름과 더불어 그가 어떻게 에즈리스 그리고 아와레에 이르렀는지를 라니아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원래 그는 에즈리스 그리고 행성계 출신도 아니었지만 숲을 헤매고 헤매다보니, 에즈리스 일대에 우연히 이르러 클라리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그가 당시에 습격을 받은 듯한 행색을 보였음은 그 쪽 세상에서 분노한 사람들의 습격 와중에 간신히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미라는 본래 이름이 미르사 (Myrtha) 라 하였다. 원래 그의 이름이 아니라 윌리 여왕의 이름으로서, 원래 이름은 물론, 전생의 기억도 상당히 남아있는 듯해 보였지만 그 기억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행성계의 어느 숲 속에서 다른 윌리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신생 윌리로서 다른 윌리들과 동행하며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숲 속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죽었다는 속설이 떠돌면서 숲 속의 윌리들 탓이라 여기며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윌리들이 거주하는 일대의 숲을 습격해 왔다.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숲의 초목들이 불에 타고, 자신의 가족들이었던 윌리들이 하나둘씩 무참히 살해당하여 소멸당하고 있었다. 자신을 비롯한 어린 윌리들은 숲 속 깊은 곳에 있던 여왕 미르타 (Myrtha, Mirta) 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지만 결국 사냥꾼과 사제들이 미르타의 거점까지 도달하고 있었으며, 결국 위험을 직감한 미르타가 어린 윌리들을 숲에서 탈출시키려 했으며, 미라는 그 때에 간신히 사람들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어린 윌리들은 어떻게 됐을지 미라 씨는 알아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라는 이미 그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이후, 아네샤가 건네는 물음에 리에타가 답했다. 이후, 클라리스에 의해 발견됐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미라라 칭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을 마지막까지 지켜 주었던 미르타 여왕의 이름을 이어받으려 했던 것 같다고 이러한 그의 행동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성인 트윌리온 (Twillion) 은 미라가 직접 지은 성으로 윌리 (Willy) 였던 그의 출신을 잊지 않기 위해 지으려 했던 것이라고,
  "그렇게 본래는 어둠의 요정이었지만 클라리스, 루미, 라니아 아줌마 등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었고, 미라 그 자신에게도 어두웠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를 갖고 있었어요. 클라리스, 라니아 아줌마로부터 이어받은 빛의 마력을 받아들이고, 그 마력을 자신의 몸에 깃들여 몸에 품은 어둠의 기운을 빛의 기운으로 바꾸기 위해 많이 노력을 기울여서 지금은 윌리의 기운은 몸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클라리스, 루미 등과 다를 것 없는 요정이 되어 있지요."
  아와레의 요정들 중에서 라니아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지만 특히 미라는 그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와 클라리스를 인생의 구원자로 여기며, 리에타, 루미 등을 더할 것 없는 친구로 여기며 평생 클라리스와 라니아를 따르고 클라리스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선언을 하기에 이를 정도라고. 그러할만하기는 했다, 저주받은 존재였던 그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며 그의 삶에 구원을 안겨준 이들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었던 것일지도.

<- 2-7. Go to the Back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