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너희들, 벽면 봤어?" 이후, 나는 앞장서 가던 카리나를 비롯한 일행을 불러서 주목하게 하였다. 그 이후, 자신이 소환한 빛을 횃불 삼아 앞장서던 카리나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며 "뭘 본 거야?" 라고 묻자, 바로 벽 내부에 숨은 빛들을 가리켰다.
"이런 것들이 숨어 있더라고." 이후, 카리나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빛들이 천천히 깜박이는 모습을 카리나 등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괴물의 몸 속에 갇힌 영혼들이 저들인가 봐."
"그래?" 그러자 카리나는 바로 벽면 쪽으로 다가가서 희미하게 깜박이는 빛들을 보려 하였다. 아마 그 이후, 카리나는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창가 등에 다가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두 손을 유리에 갖다대고는 했었으며, 그 때에도 자기 버릇대로 반 즈음 투명한 통로의 내벽으로 두 손을 내밀더니, 그 두 손을 벽면에 대고, 고개를 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습관적인 행동이었음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런 그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뭔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리나의 두 손이 갑자기 하얗게 빛을 발하더니, 벽면 안쪽의 빛들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리나 씨, 일단 손을 떼지 말고 있어 봐요." 그 무렵, 카리나의 뒤에서 따라오던 세나가 그런 카리나의 모습을 보더니, 그에게 손을 떼지 말고 있어달라고 청했고, 이에 카리나는 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요청에 응해 손을 떼려다가 그만 두고 계속 손을 벽면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카리나의 손에서 일어나는 빛에 반응한 듯이 벽 내부의 빛들이 서서히 그의 손 쪽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뭔가 징조 같은데......." 암만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런 빛의 움직임을 두고 모종의 '현상' 같은 것이리라 짐작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리나 역시 그것을 모종의 '징조' 로 여기고 있었고, 그러면서 나에게 무슨 징조 같냐고 물어 보았지만, 나라도 딱히 짐작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카리나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답을 하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한편, 세나는 카리나의 좌측 곁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더니, 왼쪽 벽면을 향해 다가가서는 검을 잡고 있지 않던 자신의 왼손을 높이 들어 벽면의 높은 부분에 올렸다. 그 순간, 세나가 손을 올린 부분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 빛에 반응한 듯이, 벽면 내부의 빛들이 빛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빛을 보고 이끌리는 생물들 같아." 그 때, 내 곁에서 그 광경들을 지켜보던 아잘리가 그렇게 말했고, 이후, 나에게 벽면을 만져보거나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전에 네가 해 보지 그래?" 그러자, 나는 바로 그렇게 되물었고, 그 이후, 아잘리는 "그러하지, 뭐." 라고 답하더니, 곧바로 먼 저편으로 몇 걸음 뛰어 가더니, 오른쪽의 벽면에 자신의 왼손을 갖다 대었다. 하지만 아잘리의 손에 벽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거 봐." 아잘리가 말했다. 그러더니, "원래, 난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어." 라 이어 말했다. 그 모습을 그를 따라가서 지켜보며, 나는 벽면 안쪽의 빛들에 특별히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카리나, 세나는 그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아잘리 그리고 나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 카리나, 세나가 벽 속에 갇힌 과거의 영혼들과 모종의 인연이 있기에 (둘 모두 과거의 영혼들과 인연이 있을 법한 뭔가가 있었다) 그런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나는 아잘리에게 물러서 보라고 하고서, 아잘리가 손을 댔던 그 벽면에 그를 대신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벽면에 아잘리처럼 왼손을 올려 보았다. 나 역시 아잘리처럼 특별히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으며 벽면을 지켜보려 하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벽면의 내가 손을 대고 있는 부분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벽면 속의 빛들이 깜박이는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카리나, 세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서 내 손에 의해 나타난 푸른 빛에 다가가며 하얀 빛들이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으니, 마치 빛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손을 올린 부분에서 생성된 푸른 빛은 불꽃처럼 벽면 내부로 퍼져갔으며, 그 불꽃의 형상을 보며, 빛들은 마치 두려워하는 듯이 물러서고 있었다. 여기에 불꽃의 형상이 퍼져가면서 기괴한, 마치 울부짖는 듯한 괴악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하였다. 그 괴악한 소리는 사악한 웃음 소리 같다가도,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를 내기도 하니, 나 자신에게도 불안하게 들렸고, 결국 나 자신도 그 소리에 놀라며, 나도 모르게 손을 벽면에서 떼게 되었다.
"방금 전에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그 때, 카리나가 다급히 나의 곁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러자 나는 내가 벽면에 손을 대더니, 푸른 불꽃이 벽면 안쪽에서 일어나면서 괴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나름 사실대로 밝힌 후에 다시 오른손을 벽면 위에 올려 보았다. 그러자 이전 때처럼 벽 내부로 푸른 불꽃의 형상 같은 것이 퍼져갔고, 벽면 안쪽의 빛들이 그것에 반응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불꽃이 퍼지기 전에 손을 내렸다. 그 괴악한 소리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분명 카리나, 세나의 손에 의해 일어난 반응과는 많이 달라, 그렇지?"
이후, 나는 나의 곁으로 다가온 세나, 카리나에게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카리나가 "그런 것 같네." 라고 답했다. 세나 등이 벽면에 손을 대자마자 벽면에 빛이 일어나면서 벽면 안쪽의 작은 빛이 그 빛에 이끌린 것과는 누가 보더라도 대조적이었고, 이는 뒤쪽에서 일행을 조용히 따라오던 잔느 공주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 확신했다.
"공주님, 잔느 공주님께서는 방금 전의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나가 나를 대신해 잔느 공주에게 물었고, 그러자 잔느 공주가 일행 사이에 이르더니, 내가 손을 대었던 벽면 근처로 다가갔다. 그는 잠시 벽면 안쪽의 빛들을 살펴 보더니, 그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하지 않고, 바로 이렇게 말했다.
"서로 상반된 감정을 드러냈고, 그래서 상반된 반응이 나온 것 같아요."
잔느 공주는 벽면 내부의 빛들을 보면서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일종일 것이라 믿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카리나, 세나가 손을 올렸을 때와 내가 손을 올렸을 때를 관찰하며, 각각의 현상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방금 전에 아르사나가 손을 대었을 때 푸른 불꽃 같은 게 벽 내부를 물들이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제가 손을 대었을 때에는 하얀 빛이 퍼지고 있었고요, 뭐가 다른 거예요?"
이후, 일행은 통로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중간 즈음에 위치한 잔느 공주와 동행하면서 카리나가 물었다. 그러자 잔느 공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혀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카리나가 그렇다고 답하자,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쉽게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나 님, 카리나 님의 경우에는 그 빛에서 자신에게 낯설지 않은 무언가를 찾은 것 같았어요. 그 빛의 밝음을 통해 자신에 대한 구원의 희망을 찾고, 그 빛을 향해 모여든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세나 님, 카리나 님에 대해서는 지금 생은 아닐지라도 이전 생애에 그들과 인연을 맺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아르사나의 경우에는......?"
"아르사나 님의 경우에는...... 그 빛에서 영혼들이 끔찍한 기억을 느낀 것 같았어요. 방금 전에 카리나 님께서 불꽃이 퍼져간다고 말씀드리셨고, 저도 그렇게 보았지만...... 그 불꽃처럼 보인 형상은 실은 불꽃이 아닌 다른 거예요."
"불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 것이지요?"
"피. 사람이 흘린 피예요. 아르사나 님의 영혼에서 피의 기운 같은 것이 나와, 벽면 내부로 스며들고, 그 기운을 감지한 영혼들이 끔찍한 기억을 느낀 거예요. 이전에 울려퍼진 흐느끼는 소리는 영혼들이 과거를 떠올리며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소리였던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에게 심각한 심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했지만, 불길한 기운이 내 몸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 좋게 들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잔느 공주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아르사나 님은 이런 피의 기운을 스스로 습득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이어받았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그 어머님께서는 아르사나 님의 할머님으로부터 그 피의 기운을 이어받으셨을 것이고...... 아르사나 님은 적극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다보니, 피의 기운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다면, 아르사나 씨의 그 기운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후, 세나가 묻자, 잔느 공주가 바로 답했다.
"그 힘이 사악한 것에만 쓰이는 것은 아닐 테니, 사악한 존재는 아니겠지요. 다만, 피의 기운인 만큼, 피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그 피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시는 것이지요?" 이후, 세나가 다시 물었을 때, 잔느 공주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다만, 벽면 안의 영혼들은 옛적 인간들의 영혼들일 것이고, 그들이 피의 기운을 보며 괴로워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피의 기운을 통해 괴로움이나 공포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괴로움과 공포의 기억은 괴물이라 칭해졌던 기계들에 의해 피를 흘리며 죽게 된 것에서 유래가 되었겠지요, 당시 사람들의 영혼들은 기계에 의해 죽어간 이후, 그 몸 속에 갇혀 이렇게 된 것이었으니까요."
"기계도 피를 흘리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는 아니겠지요."
세나가 말했다. 그 이후, 자신이 우연히 들은 바가 있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
옛 문명 시대, '인간들의 시대 (Era Hominum, Era Øominum)' 라 칭해졌던 그 먼 옛날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할 때가 종종 있었어요. 전쟁이라든지, 재난, 학살 같은 끔찍한 일들이 한 번씩 벌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땅에는 인간의 피가 많이 흘러서 스며들었고, 그 땅 깊숙한 곳에 피의 기운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 피의 기운 속에서 영체가 태어날 때가 있었대요. 피의 기운과 피를 흘린 기억이 더해지면서 거기서 영체들이 자연적으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 영체들은 피가 스며든 땅에 남은 피를 흘린 기억을 갖고 있어서 그것에 기반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여기서 태어난 피의 영체가 있다면, 이 행성 전역에 걸쳐 기계에 의해 학살당한 불행한 사람들이 남긴 피의 기운에서 태어났겠지요. 그리고 그 영체의 자손들 중 일부가 인격체가 되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손을 남겨, 그 자손이 세상에 흩어졌는데, 아르사나 씨의 일가 선조가 그 자손 중 하나라면......?"
"그렇다면, 그 피의 기운을 보며, 왜 영혼들이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것일까요?"
"그 기운에 서린 피의 기억을 느끼고, 자신이 피를 흘린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잔느 공주가 묻자, 그렇게 답했다. 이후, 세나가 언급하기를, 피의 기운이 마력에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했다. 내가 얻은 마력은 어머니 등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으로 내가 설령 그런 피의 기운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마력과는 관계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피의 기운을 이어받았다면, 이는 어머니께서도 같은 기운을 이어 받으셨음을 의미하겠지만, 어머니께서 강한 마력을 내세우거나 하신 적은 없으셨기에. 다만, 세나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기는 했다.
"아르사나 씨께서는 마력을 스스로 단련하셨을 것이고, 피의 기운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뭔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 피의 기운이 영혼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듯, 그 피의 기운에 서린 기억이 학살의 원흉에 대한 본능적인 무언가를 일깨울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아르사나는 그런 녀석들만 보면 용서하면 안 되니 뭐니, 자주 그랬었는데......."
그 때, 아잘리가 나를 따라가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나한테 내가 이전부터 '그런 막 나가는 것들이 세상에 다시 있으면 안 된다' 라고 자주 말하거나 하지 않았느냐고 어릴 적 일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녀석이 그런 말을 할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본능적인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요."
"예." 그러자 세나가 답했다. 그러더니, 그 피의 기운이 몸 속에 있다면 본능에 의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기도 했다.
일행의 발걸음은 첫 모퉁이에 이르렀다. 왼쪽을 향하는 길목을 지나쳐, 벽면을 따라 걷고 있던 그 때, 벽 안쪽의 빛들이 조금씩 밝아지더니, 일행이 걸어오는 쪽으로 이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나지막히 울리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환청일 수도 있어서 정말 뭔가 소리가 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카리나, 세나가 앞장서고, 나는 아잘리와 함께 잔느 공주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카리나에게 이렇게 청해 보았다.
"카리나, 벽면에 손을 한 번 대 보지 않을래?"
"그래." 그러자 카리나는 바로 알았다고 화답하고서 발걸음을 멈추고 벽면의 오른쪽 한 곳에 자신의 왼손을 대어 보았다. 그러자 이전 때처럼 왼손으로 만진 부분 안쪽이 빛을 발하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벽면 안쪽의 영혼들이 밝게 빛을 발하며 이끌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잖아." 카리나가 말했다. 그러는 동안 영혼들은 빛의 형상으로 변해 가면서 카리나가 일으킨 빛에 점차 모여들고 있었으며, 그 동안 벽면 안쪽에서 뭔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커지고 있었으며, 환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이전 때와 달리, 아잘리에게도 분명히 들렸다.
카리나에 의해 일어난 빛은 점차 벽면 안쪽으로 퍼지고 있었으며, 그것에 따라, 영혼의 빛들을 제외하면 어둡기만 했던 벽면 내부가 점차 밝아져가니, 벽면에 빛이 퍼져가는 것에 벽면 속의 빛, 영혼들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영혼들이 빛에 이끌리는 것을 넘어 조금씩 그 형상이 밝아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카리나 님께서 발하시는 빛에 의해 영혼들이 희망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하겠지요." 이후, 내 곁에 있던 잔느 공주가 말하자, 나 역시 같은 생각임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는 동안 카리나는 검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을 벽면의 오른쪽에 대고 있으면서 앞쪽으로 걸어나가려 하였다. 빛의 궤적이 손을 따라 움직이면서 영혼들을 이끌고 있었다.
카리나가 벽면에 손을 대며, 벽면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가는 동안 카리나의 손에서 생성된 빛이 점차 벽면 안쪽 깊숙한 곳으로 계속 퍼져가고 있었으며, 벽 속의 빛처럼 보이던 벽 내부에 갇힌 영혼들도 그것에 힘을 얻어가는지, 점차 그 형상이 더욱 밝아져 가니, 이제는 영혼들이 뿜어내는 빛들 만으로도 앞길이 밝아져 내부의 통로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봐, 아르산, 저 빛들이 앞길을 인도하고 있잖아."
아잘리가 말했다. 그 말 대로, 빛들이 커지고 밝아지기 시작한 이래로 영혼들의 빛은 일부는 길을 따라 빛을 내고, 일부는 카리나를 비롯한 일행의 움직임을 따르면서 마치 일행을 인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인 빛이 얼마나 밝았는지, 방에 등불을 환히 밝히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커다란 등이 길마다 일정 간격으로 놓인 정도로 공간 내부가 밝아지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어둠의 존재가 기습을 하더라도 그 형상이 빛 속에서 훤히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카리나가 손을 대는 벽면 내부의 빛에 반응을 한 탓인지, 건너편이라 할 수 있는 왼쪽 벽 내부의 영혼들 역시 오른쪽 벽 내부의 영혼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빛을 발하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어떻게든 밝은 빛을 내려 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세나가 이전 때처럼 왼쪽 벽면에 왼손을 올렸고, 그러자 벽 안쪽에서 반응이 일어나 벽 안쪽에 빛이 생성되기 시작하였고, 그 빛은 카리나에 의해 생성된 빛보다 더욱 빠르게 확산되어 가면서 영혼들의 반응을 이끌어 갔다.
"이런 빛이 지속적으로 벽에 남거나 하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야?"
내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물었다. 만약의 경우, 싸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나, 카리나 모두 어떻게든 전투에 참여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나 아잘리가 있기는 하겠지만, 두 사람만으로는 한계는 명확했다. 우선 나도 그렇고, 누군가를 지킬 수 있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안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영혼의 기질에 벽 내부 그리고 벽 내부의 영혼들이 반응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에 두 사람을 대신할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존재를 내세울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보려 한 것이었다. 그 물음에 이런 대답이 나왔다.
"그런 것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손길의 영혼에서 퍼지는 기운에 반응하는 것이라서 그래요. 뭔가 빛을 스며들게 하는 것을 아르사나 씨라면 하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지금 보이는 것 같은 반응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세나의 대답이었다. 카리나 역시 그 대답을 듣자마자 그렇다면 영혼들의 지속적인 반응을 이끌려면 계속 손을 벽면에 대고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고, 세나가 그 대답으로 그런 것 같다고 답하였다.
그 이후, 세 갈래 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후, 나는 갈림길의 중심에 이르러서 처음에는 우측 방향에 보였던 길목 건너편을 바라보며 서려 하였다. 그 너머에는 문 혹은 동굴의 입구 같은 곳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 통로로 가야 할 것임을 바로 알리고 있었다.
"두 갈래 길이 하나가 되는 곳이 그 지점일 거야, 그 지점 너머에 문이 있으니, 그 문으로 들어가야 깊숙한 곳 혹은 중추로 들어갈 수 있겠지."
아잘리가 말했다. 그리고 문이 보이는 길목으로 어서 가자고 청하기도 했다.
한편, 벽면에 손을 대며 길을 걷던 카리나는 갈림길에 이르자마자 벽면에서 손을 떼고, 다급히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자신이 앞장서 가겠다고 말하고서, 바로 그 이유를 말하려 하였다.
"이제 중추에 이를 거 아냐, 분명 녀석의 힘을 가진 뭔가가 있을 거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무렵, 세나 역시 벽면에 손을 떼고 나와 아잘리 그리고 잔느 공주의 근처에 이르렀다. 이후, 잔느 공주가 벽면에 손을 대어 영혼들과 접촉하는 역할은 자신이 맡겠음을 알렸다. 그 역시 그 너머에는 싸움이 있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것에 대비하도록 하겠음을 밝혔다.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잔느 공주 홀로 밖에 있게 될 판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잔느 공주가 그 안의 영혼들과도 접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같이 안으로 들여보내게 되었다.
"싸움은 세나, 카리나 둘이 맡았으면 좋겠어. 나와 아잘리는 잔느 공주님을 지킬 테니까.'
"너와 친구 분, 둘로 괜찮겠어?" 그러자 카리나가 물으니, 내가 답했다. "너부터 잘하면 돼."
"잔느 공주님, 이전 때처럼 보호막이 지켜주지 않겠지만, 제가 공주님을 어떻게든 지켜드릴게요."
아잘리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쓸데 없이 자신감은 컸던 아잘리는 그 때에도 잔느 공주에게 그런 포부를 드러냈던 것. 이후, 카리나가 앞장서서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세나가 그 뒤를 따랐으며, 잔느 공주를 호위하며, 나와 아잘리가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며 나는 벽면 쪽을 살펴보려 하였다, 영혼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려 하였던 것. 카리나, 세나의 영향이 없어진 만큼, 영혼의 빛이 약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 형태를 보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벽 안에 갇힌 영혼들의 기운은 약해지지 않고 있었다. 이전 때처럼 지속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문이 있는 쪽으로 일행을 인도하려 하고 있었다. 이미 문이 있는 쪽이 일행이 가야할 곳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인도가 있어서 그 쪽으로 갈 수 있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이제 깨달은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잔느 공주가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길을 느끼면서 두 사람이 자신의 편이며,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임을 직감하고, 자신이 가진 힘으로 두 사람을 인도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 너머에는 분명 위험한 무언가가 있을 텐데......."
"그 위험한 존재를 두 분이라면 없애줄 것이라 믿고 있을 거예요."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잔느 공주가 바로 그렇게 화답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길을 따라 걷다가 문 앞에 도달할 무렵, 벽 안쪽에서 뭔가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가 사라졌고, 그 때문에 잠시 놀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내 곧, 아무래도 이런저런 환상들을 보다 보니, 헛것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진정하고 정신 차리자고 생각했었다.
"아르산, 왜 그래? 뭔가 안 좋아?"
"아니, 헛것을 본 것 같아서." 그 때, 내 곁에 있던 아잘리가 그런 나를 보더니, 그렇게 물었다, 이상 행동을 했다고 여기고,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나는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화답했고, 그러면서 먼저 들어선 카리나, 세나의 뒤를 따라 세 번째로 문을 넘어섰다.
- 이후, 아잘리가 잔느 공주를 이끌고 공간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후, 아잘리는 잔느 공주를 문 근처에 머무르도록 하면서 그의 곁에 머무르니, 잔느 공주를 지켜주는 역할을 자처한 것으로 보였다.
문 너머로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굴의 공간 같은 공간의 입구 건너편 끝에는 고목 줄기처럼 생긴 종유석 기둥 하나, 그 둘레만 하더라도 몇 아름은 되어 보일 법한 거대한 기둥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나무 뿌리 같은 돌이 돌출되어 있어서 고목 같은 느낌을 전해주려 하고 있었다. 나무 뿌리처럼 생긴 돌 내부로는 빛들이 불안하게 깜박이고 있으면서 나무 줄기 같은 돌기둥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으며, 그 흐름의 끝은 나무의 밑둥 즈음에 해당되는 돌기둥 하단의 한 지점으로 돌기둥 하단에는 붉은 빛을 발하는 핏덩어리 같은 것이 맥동하고 있었다.
돌기둥 안쪽의 덩어리는 처음 봤을 때에는 핏덩어리 같아 보였고, 그 이후로 자세히 보니, 인간의 심장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계속 박동하고 있으면서 자기 주변으로 붉은 빛을 확산시키고, 기둥 외부로 붉은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을 때, 벽 내부를 빛내고 있던 영혼들의 기운이 벽 바깥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돌기둥 쪽으로 접근해 가던 카리나 혹은 세나의 기운에 반응해서 영혼들이 기운이나마 표출시키려 했던 것 같다.
"아르산, 저길 봐."
"뭔데?" 그 때, 아잘리가 공간 우측의 벽면을 가리켰고, 그러자 내가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서 아잘리가 가리킨 쪽을 돌아보려 하였다. 그 순간, 나의 눈앞으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형상으로 성인 인간의 모습을 한 무언가였다.
'방금 전에 비슷한 모습을 본 것 같은 때가 있었는데.......'
그러자 나는 이전의 잠깐 헛것을 본 것 같았던 때를 떠올렸다.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잠깐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해서 내가 환각을 본 것 같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었는데, 그 때와 같은 형상이 다시 보인 것은 물론, 아잘리에게도 보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하나만 보였으나, 그 이후로 하나씩 그 형상이 추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하나가 아닌 둘, 셋, 한 무리씩 그 형상이 나타나면서 돌기둥 주변에 여러 희미한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희미한 형상들은 하나의 모습만을 하고 있지 않았고, 각자 다른 모습에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 영혼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형상들은 카리나 등에게도 보였는지, 카리나 역시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희미하게 빛나는 형상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Kiuj vi estas? (누구십니까?)" 오른손에 검을 쥔 카리나가 형상들에게 물었다. 어떤 말을 할 지 알 수 없다보니, 에스페란타 (Esperanta) 를 활용하려 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형상들은 어떤 답도 하지 않았고, 그 이후, 그의 오른편 곁에 있던 세나가 형상들에게 물으려 하였다.
"Who are ye? (누구신가요?)" 그 이후, 그는 갑주 형태의 환수를 소환해 자신의 우측 곁에 머무르도록 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형상들에서 목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울음 소리 혹은 한탄하는 소리 같은 것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어떤 목소리가 일행에게 말을 걸려 하였다.
Nunadrl, wri mosîbi boyscinayo?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다. 성별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목소리만으로 어린 아이의 성별을 감별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편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것을 두고, 처음에는 짧게 말한 것에 희미하게 들려서 그런가, 했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Who? (누구야?)" 이후, 아잘리가 말했다. 그에게도 뭔가 소리가 들렸던 모양으로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전하는 의미를 알 수 있는 이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마지막의 억양을 통해 목소리의 주인이 공간 내부로 들어선 이들, 나를 비롯한 일행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Nunadrl, iri wa boseyo.
이후,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과 같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이전 때처럼 건네는 말의 의미를 알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나를 비롯한 이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전하는 억양이 평상시에 누군가를 부를 때의 그것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으로 '이 쪽으로 와 봐라'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으며, 앞 부분은 뭔가를 부를 때의 목소리로, 처음 들린 목소리와 같은 뭔가를 말하고 있어서 누구인지 몰라도 같은 이를 지칭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는 있었다.
두 번째 들린 아이의 목소리에 내가 바로 그렇게 되물었다. 에스페란타는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보였으나, 옛 브리태나는 알아들은 것 같아서 그 쪽 말로 대화를 시도해 보려 한 것. 그러면서 카리나와 함께 나무 안쪽의 심장처럼 보이는 것을 향해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다.
그 순간, 나의 눈앞으로 뭔가 하나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무 주변으로 여러 빛들이 떠오르더니, 그 중에서 나무 안쪽의 '심장' 바로 앞에 있던 빛이 점차 커지면서 하나의 희미하게 빛나는 형상을 이루기 시작한 것.
잠시 후, 그 형상은 자그마한 아이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짤막한 머리카락과 낡은 옷차림을 했을 법한 소년, 인간 나이로 치면 6 ~ 7 세 즈음 되었을 법해 보였던 소년의 형상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소년의 형상은 앞장서 가던 카리나의 바로 앞에 있었기에, 이를 두고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아닌 카리나의 움직임에 반응해 그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볼 수 있었다.
다소 희미하기는 했어도, 소년의 얼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그 곳이 괴물의 몸 속이며, 괴물의 육신이 자리잡은 사당에 이르기 전부터 어떻게 소년 같은 이들이 그 육신 내부에 있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기에, 그 표정이 밝을 리 없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르사나, 저기를 봐." 그 때, 카리나가 나를 불러서 주변을 보라는 의미의 말을 건넸고, 그 말에 나는 바로 주변 일대를 둘러보며, 나무와 '심장' 주변 일대의 빛들이 사람의 형태로 변화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 역시 어둡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그들 사이로 음울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Nunadrl, wrinîn yâgi-e gacyâißâsâyo, azcu oräzcânbutâ.
소년으로부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기는 했으나, 한 가지 떠오른 바가 있었다. 이전에 들려왔던 괴물과 잔느 공주의 대화가 우선 떠올랐고, 이어서 괴물의 빛과 카리나의 빛이 서로 부딪쳐서 빛이 퍼졌을 때에 떠오른 그림을 그리는 듯이 펼쳐졌던 환영, 그리고 그 환영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들이었다. 서로 다른 상황이기는 했지만, 어느 쪽이든, 비슷한 느낌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잔느 공주님이라면 그 말을 알아들으실 수 있을 거야.'
그 이후, 나는 잔느 공주가 자신도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한 것, 그리고 잔느 공주의 목소리가 환영 속의 목소리를 통역해 준 것을 떠올리며, 나의 뒤쪽에 있던 잔느 공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잔느 공주가 그런 나의 왼편으로 다가가더니, 바로 이렇게 말을 건네려 하였다.
"저희들에게 이 쪽으로 와 보라 했어요,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이들에 대해 말했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갇혀 있었노라고."
그러더니, 나와 카리나가 있는 곳을 넘어, 나무 밑둥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소년의 영혼에게 자신이 직접 말을 걸려 하였다.
Oräzcânbutâramyân, ânzcebutâ gacyâißâdângâni?
Izcen, zcâdo zcarlmorgeßëyo. Narîrl senîngâdo yimi izcâbâryâco. Yâgi-tnîn dõan apîm gwa görowmi nâmu manaßëyo, âtâke narîrl serlsu itgeßëyo?
Gîrâkuna. Gîrâtamyân, yâgiro ogi zcânenîn sesãi âtätnînzci, marhä zcuzci angketni?
그러는 동안 먼저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선 나와 아잘리, 그리고 잔느 공주를 이끌고 온 세나, 카리나 모두 그의 뒤에서 조용히 그가 영혼과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그들 사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잠깐 카리나 그리고 그 왼편 곁에 있던 세나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가 보려 하였다. 그 동안, 카리나는 세나와 함께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영혼과 대화를 이어가는 잔느 공주의 모습을 지켜보려 하고 있었다.
"카리나, 지금 들리고 있는 말이 무슨 종류의 말인지 알 것 같아?"
카리나의 우측 곁으로 다가간 이후에 그에게 물었다. 여러 지역을 전전하였을 카리나라면 혹시 아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달리 카리나에게는 긍정적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말이야."
카리나에 의하면, 알바레스 (Albares) 라 칭해진 비교적 멀리 있는 행성 등지에 거주하는 '고양이 요정족' 사람들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특이한 말을 익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고양이 요정족 사람을 만나, 해당 언어를 들어본 기억도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익히고 있던 그 특이한 말과는 비슷한 느낌은 없었다고 했다.
"비슷한 느낌 하나조차도 없다는 거지?" 이후, 그렇게 묻자, 카리나는 확신에 찬 듯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서, 옛 브리태나는 알아듣는 것으로 보아, 말을 하는 이들은 옛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 말 역시 옛 인류의 말들 중 하나임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하고서,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옛 브리태나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 이어 말하니, 그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에는 옛 브리태나로 말을 걸기로 했다.
Zcarîn morîgeßëyo, gapzcagi sayreni urlryâtgo saramdri zcibîrl dagîphi tdwicânagago ißësëyo. Ayidrlbutë ârîndrlkgazci modu musâwâhanîn pyozcângiâßëyo. Gîräsâ, zcâdo musâwâßëyo, mwânga napbîn yri irânarlgâpman gataßëyo.
그 무렵에 소년의 영혼이 잔느 공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잔느 공주가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며 소년의 영혼에게 물었다.
Gîrâmyân...... tarlcurlîn...... harlsu ißëni?
Nyusrîrl bogo gazcokdri zcibîl nawa tdânaryâ häciman...... gîtdä gömurldri cyâdrâwaßëyo. Zcâdo apba, âmmawa hamkge tdwidaga...... bici bânzccagyâtgo....... kgä-âboni yâgiyâßëyo.
Gîrätguna.......
이후, 소년이 다시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 무렵의 목소리는 이전 때보다도 슬프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Nâmu manîn saramdri zcugâßëyo...... gömurldri saramdrîrl magu zcabamâggo burltäwugo ißësëyo. Urîmsori, bimyângsoriga yâgizcâgisâ drlryâßëyo.......
그 목소리가 다 들리고 나서야, 잔느 공주는 일행을 향해 돌아서더니, 바로 이렇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아이는 지금은 바닷속에 있을 도시에 살고 있던 인간들 중 한 명이었을 거예요. 도시에 살던 평범한 가족의 일원으로 당시의 평범한 소년들 중 한 명이었겠지요. 그러다가 재난 경보가 도시에 퍼지면서 그 경보를 알아듣고 가족들이 집을 나와 도시를 탈출하려 했지만, 이미 괴물이라 칭해진 기계 병기들이 도시를 습격했고, 병기들의 폭격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던 것 같아요.
아이는 병기들의 습격 도중에 병기들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빔이나 화기로 폭파시키고 태워서 죽이는 광경들을 계속 지켜봤었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비명, 절규, 통곡 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던 것 같아요. '괴물' 이라 칭해진 병기들의 재앙을 너무도 두려워 했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다른 영혼들처럼 기계 병기들이 일으킨 재앙의 희생자들 중 한 명으로 오랫동안 여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세나가 잔느 공주에게 그렇게 물었다.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크게 느낀 바가 있는 듯이, 심각해진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잔느 공주는 그러할 것이라 답하고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폭발에 휘말려 그리 되었다는 것이었지요. 적어도, 기계 병기의 몸 속에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병기들의 몸 속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살갗부터 잔인하게 해체되는 일을 겪었을 테니까요, 그렇지요?"
그 이후, 세나가 묻자, 잔느 공주는 그러하다고 답했다.